살아 있는 자들을 향한, 좀비들의 우웨웨웨 조금은 뻔한 훈계들...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있으니 이런 일 하나쯤 보태진다고 해서 무어 크게 문제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 하게 되는 김중혁의 폭풍 같은 상상력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렇지만 이번에 작가가 다다른 좀비, 혹은 좀비에 대한 상상력은 너무 얌전하거나 그 강한 기시감으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작가에게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그런 류의 좀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삶은 일직선이었다. 하나의 사건은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은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책의 서두에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게다가 책의 뒷표지에까지) 거론되고 있는 위와 같은 문구는 사실 너무 일반적이다. 소설이 어차피 사람의 일을 다루는 것이라면 (좀비는 사람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물론 할 말이 없지만) 소설 속 주인공인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이러한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제아무리 엉뚱한 스토리의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건들로 구성된 소설을 본 적이 있는가.)
때문에 모든 일이 연결되어 있다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이미 소설을 구리게 만든다. 그건 소설가를 하수로 보이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이나 중편 속의 김중혁이 가지는 고급스러운(?) B급의 포스를 누그러뜨리는 낯 간지러운 행위다. 좀비들, 이라는 제목이 주는 낯섦과 김중혁이라는 소설가가 건네는 은근한 기대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뭔가 초짜의 냄새를 풍기는 구질구질한 설명이다.
소설은 안테나 감도를 테스트하며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채지훈이 어느 날 고리오 마을이라는 수심 감도가 제로인 마을을 발견하면서,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죽은 형의 유산인 LP에서 스톤플라워라는 그룹과 조우하면서, 그리고 스톤플라워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는 심경이 되면서, 그렇게 찾아간 도서관에서 뚱보130을 만나게 되면서, 뚱보130과 함께 찾아간 고리오 마을에서 홍혜정을 만나고 또 그의 딸 홍이안을 만나면서 벌이게 되는 일련의 좀비 구출기이다.
“... 좀비와 대면한다는 건 허공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다...”
‘세 번 정도는 죽어야 죗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좀비들과 그러한 좀비들을 총으로 쏘며 죄의식을 없애는 군인들, 그리고 그 좀비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소설은 죽은 자와 산 자, 그리고 죽어 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자와 살아 있다고 해도 죽어 있는 것과 진배 없는 자들의 경계를 허물면서 이어진다.
“... 특별한 죽음은 없다. 특별한 죽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을 동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세상에 특별한 죽음은 없다.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고, 0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0이 되지 말고, 쉽게 소멸하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을 통하여 삶에 대해, 그리고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자들을 통하여 죽음에 대해 주인공은 느낀다. 그런데 그것이 어딘지 어리숙하다. 너무 먼 곳을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온 느낌, 그런데 그것이 돌아온 탕자의 모습이 아니라, 불필요한 가출에서 돌아온 자의 모습이다. 장편 소설을 향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의 도전이 자꾸 헛발질을 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어서 안타깝다.
김중혁 / 좀비들 / 창비 / 376쪽 /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