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문득 용이와 연결된다...
책상 너머, 책들의 산 너머 마약 방석에 고양이 용이가 있었다. 곤하게 자고 있으면 곤하게 자고 있다고 푸시푸시 숨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의자를 뒤로 물리고 책상을 돌아 그 너머에 다가가면 퍼뜩 고개를 들고, 쓰다듬으면 저도 내 손을 핥았다. 내가 쓰다듬기를 멈추고 손을 뗀 다음에도 고양이 용이는 내 손을 핥던 그 자세 그대로 내가 쓰다듬던 자리를 내처 핥았다. 나는 이 연결이 좋아서 잠시 쓰다듬고 쓰다듬은 자리를 핥는 용이를 관찰하고는 했다.
표시의 영역과 표현의 영역, 나는 서로의 영역이 겹치고 헤어지는 장면을 목도하고, 고양이 용이는 그 자리를 흡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따듯한 말 한 마디 기꺼이 건네지 않고도 제 자리를 고수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것에서 고양이의 권위는 발생했다. 반복되는 공간을 지루함의 기색 없이 긴 시간동안 누릴 수 있는 성정을 타고났으니 여러 개의 목숨으로 두터운 삶을 살며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입구를 공유하면서 누가 안이고 누가 바깥인지를 구별하지 않았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바깥인지도 구분하지 않았다. 문턱이 없는 문이 안으로 열리거나 바깥으로 열리는 것을 시샘하지 않았다. 입구가 출구가 되어도 출구가 입구가 되어도 놀라지 않았고 느리거나 빠른 걸음에 애달파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 안팎의 손잡이가 하나의 방향으로 돌고 돌다가 불쑥 떨어져 나오면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는 주머니에 담겨져 있는 서로의 의도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주머니 속의 풍경을 묻지도 않았지만 서로의 주머니와 결별하지도 않았다.
나는 모든 사랑은 주머니 안에 있다고 짐작할 뿐인데, 이 짐작은 크기가 작아서 손으로 움켜쥐어도 뾰족 튀어나오지 않는다. 복원 가능한 형태이기도 해서 오래 만지작거려도 좋다. 주머니에서 꺼냈을 때 의도하지 않은 모양이 튀어나와도 놀랄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놀라지 않게 된다. 이 밤, 내 주머니가 고양이 용이의 기억과, 사랑으로 불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