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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Oct 25. 2024

고양이(들녘)의 발치

들녘은 오른쪽 위의 이빨이 많이 모자라는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었지만...

  이번 달 초에 고양이 들녘의 발치 수술이 있었다. 고양이 들녘 이전, 오래전에 나와 아내는 고양이 용이의 가는 길을 이십 개월 동안 지켰다. 우리는 하루에 세 번, 서너 가지의 약을 먹여야 했고, 하루에 세 번 혹여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네 번 수액을 맞춰야 했다. 고양이 용이가 우리를 떠난 다음 아내와 나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십 개월이나 걸릴 줄 알았으면 우리는 시작했을까? 그 긴긴 간호의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면...


  고양이 들녘의 입에서 냄새가 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고양이 용이가 동물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정도를 (10중) 5라고 표시할 수 있다면 고양이 들녘은 무조건 10이다. 어린 고양이 들녘은 요로에 문제가 생겨 동물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들녘이는 병원에 간 적이 없다. 들녘이는 케이지를 보는 순간 쏜살같이 사라져서 언제까지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고양이 들녘은 열일곱 살이 되었고, 제아무리 동물 병원 가는 걸 싫어한다 한들 예전만큼 에너지 넘치는 고양이는 아니다. 아내와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라는 합의 하에, 내가 들녘을 안고 있는 동안 아내가 케이지를 몰래 가지고 오고,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들녘을 케이지에 넣었다. 걸어서 삼 분 거리의 동물 병원에 가는 동안 고양이 들녘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울었다.


  동물 병원에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일단 육안으로 상태가 나쁜 것을 확인하였지만 발치 수술을 위해서는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고, 마취하기 전에 피를 뽑아야 했다. 들녘의 나이가 좀더 어리다면 피검사 없이 피하(혹은 근육) 주사로 마취를 시도할 수 있지만 고령인 들녘은 그럴 수 없었다. 마취를 견딜 수 있는 몸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는 필수였다. 


  오래전 고양이 용이는 매주 혹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동물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그때마다 피를 뽑았는데, 니야옹, 살짝 울었을 뿐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병원의 선생님은 용이가 이십 개월을 더 살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치료에 협조가 가능한 천성 덕분이라고 했다. 고양이 들녘은 달랐고, 나는 온 힘을 다하여 고양이를 잡았고 한 차례 실패를 한 후에야 피를 뽑을 수 있었다. 병원의 선생님은 안도하면서 자신은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게 공을 돌렸다.


  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고양이 들녘을 병원의 케이지에서 쉬도록 했다. 나오는 길에 잠시 들여다 보았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집에 들어가 있다 다시 나와 피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몇몇 수치가 좋지 않지만 그것은 고양이 들녘의 나이와 연관이 있고, 수술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들녘을 살폈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을 향했다. 오른쪽 위의 송곳니를 비롯해 모두 3개의 치아를 발치하였다. 발치한 이빨을 선생님이 보여주었다. 아랫니도 뽑는 것이 낫겠다 싶었짐나 고양이 들녘의 나이를 고려하여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랫니의 경우 뽑다가 골절이 생길 수 있고, 고양이 들녘의 남은 수명을 고려하면 뽑아서 생기는 이득이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선생님의 남은 수명 운운에, 고양이 들녘의 나이를 실감했다. 만약 들녘이 우리의 첫 번째 고양이었다면 선생님에게 발끈, 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은 고양이 용이의 이십 개월 그리고 마지막을 우리와 함께 한 사이였다.


  그날 오후에 고양이 들녘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주 동안 유지되는 항생제를 맞았고, 마취에서도 정상적으로 헤어나오고, 사료도 잘 먹었기 때문에 그때 이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능하면 잘 아무는지 보기 위해 한 번 방문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가능하면, 이니까... 여하튼 그렇게 고양이 들녘은 오른쪽 위의 이빨이 많이 모자라는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었지만 아직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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