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깊은 침잠과 맹한 허황됨의 아슬아슬한 공존...

by 우주에부는바람

“쓸쓸한 게 뭔지 아느냐고? 모를 리 없지! 내가 엄마를 찢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익힌 감정이 바로 그런 건데.”


이름은 수시로 바뀌고 어린 소녀 정도라는 것밖에는 나이도 알 수 없는 한 소녀의 이야기... 자신을 수시로 때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가는 어미를 두고 있던 이 소녀는 그들은 진짜 엄마와 진짜 아빠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그리고 소녀는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조금씩 성장한다.


“... 나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보고 듣고 짐작하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았다. 태어나서는 그보다 훨씬 지독한 세월을 단숨에 견뎌냈다. 맞고 때리고 지르고 울고, 부수고 찌르고 할퀴고 물고, 박살내고 집어던지고 다치고 도망가고, 닦고 짓이기고 삼기고 내 혀부터 씹어대는 그런 것들...”


그렇게 소녀는 장미언니가 있는 황금다방,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던 태백식당, 도시로 올라온 다음에는 교회를 거쳐 폐가로, 그리고 대장과 달수 삼촌의 도움을 받으며 각설이패와 함께 지내다가 다시금 유미와 나리라는 불량 소녀들과 어울리는 등 그동안 자신이 견뎌냈다고 생각하는 세월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이어간다.


“... 나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나의 진짜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얼굴이 메추리알 같고, 절대 맞고만 있진 않으며, 언제나 내 숨소리에 귀기울여야 하고,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 나는 불행한 진짜엄마를 찾아서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나도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때로는 길 위의 사람들을 통하여 정서의 허기를 달래고, 또 때로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 살아가는 일의 심난함을 덤으로 알아가면서 점차 애초에 자신의 집 나온 이유인 진짜 엄마 찾기라는 프로젝트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길 위의 사람들이 채워간다. 그들을 향하여 품게 되는 여러 감정, 그들로 인하여 받게 되는 여러 감정들은 소녀를 성숙시킨다.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진짜와 가짜, 떠남과 멈춤 (혹은 돌아옴) 이라는 테마들은 언제나 소설 안에서 가치를 지닌다. 아쉬운 것은 어린 소녀의 시선과 소녀의 말을 통하여 드러나는 우리들 사회의 단면이 좀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이다. 소녀의 성장 과정을 통한 인간의 성숙 과정에 대한 집중도 좋지만 그러한 집중은 사회적으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좀더 부각되어야 확실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때문에 어딘지 무겁고도 매서워야 할 소녀의 여정이 어정쩡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사실 깊은 침잠과 맹한 허황됨이 공존하는 듯한 소녀는 결여된 리얼리즘을 대체할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리고 그러한 소녀 캐릭터의 빈 공간을 매워줄만큼 임펙트 있는 주변인물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의 시작에서 끝까지 따라다니는 진짜 엄마와의 만남이라는 목표 또한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다. 수레 소리는 들리나 그 내부를 확인하기에는 이른 문학상 수상작이다.



최진영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한겨레출판 / 304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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