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 《제리》

시대는 변해도 젊음들의 출구는 여전히 부재하니, 제기랄...

by 우주에부는바람

젊음은 소진된다. 그러한 소진의 뒤로 무엇을 남길 것인지가 문제될 따름이다. 물론 더불어 그 소진의 방식에 대해서 중구난방 떠들어댈 수는 있다. 여기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제리> 또한 그 소란스러운 젊음의 소진의 한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암암리 우리들 청춘의 내부에도 성기게 뿌려진 끈적한 성을 다루되, 그 청춘의 성매매에서는 사는 자와 파는 자의 구분이 특별하지 않다.


서울 근교의 전문대에 다니는 나는 여령 언니를 따라 미주와 함께 삼만원짜리(?) 남성 호스트가 나오는 노래바에서 제리를 만난다. 나는 그저 술을 마시기를 원할 뿐 여타의 유흥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재차 초이스를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다시금 제리를 부르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제리와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제리와의 육체적 관계를, 혹은 그 너머를 꿈꾼다.


“그날 이후로 강과의 만남은 뭐랄까, 인조이 파트너처럼 짝지어진 느낌이었다. 강이 나를 찾아오는 날마다 우리는 여관에 들었고, 그렇게 여관이 가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만날 일이 없기도 했다... 굳이 섹스를 해야 할 만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없었으므로 우리는 계속 섹스만 나누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강이 있다. 과거에는 연인이었고 이제는 심플한 섹스 파트너인 강은 나만큼이나 술이 세고 그런 연유로 좋은 술 파트너이기도 하다. 자신만큼이나 별달리 가진 것이 없는 강, 그러한 강과 섹스와 술을 주고 받으며 만나는 나... 그러나 나는 어느 날 제리가 그토록 원했던 브랜드의 시계 그리고 제리를 부를 수 있는 현금을 훔쳐서 강을 떠난다.


“왜, 그런 애들 있잖아. 시작부터 우리와는 다른 애들. 하다못해 100미터 달리기를 하더라도 나는 고스란히 100미터를 다 뛰어야 피니시 라이에 들어가는데, 어떤 애들은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나보다 40~50미터는 앞에서 달린단 말이지. 그렇지만 그게 절대 비겁하거나 부정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인 거야. 왜냐하면 그 애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서 태어난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무리 죽어라 달려도 절대로 그런 애들을 뛰어넘지 못해.”


하지만 호스트를 하고 있는 강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같은 호스트의 세계에서도 에이스가 되지 못하는 그는 또 다른 상실감에 갇혀 있을 뿐이다. 제리도, 강도 나도, 여기에 미주도 여령 언니도 부유하는 청춘일 따름이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족도 사회적 장치들도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 그 룰없음의 영역이 있을 뿐이다.


“...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언제나 혼자인 이곳에서, 끊임없이 가해자는 자괴감과 피해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고 모두에게 선택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에이스와 같은 삶을 나 또한 바라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나누어도 내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고, 그런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머물러 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주류문학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범상치 않은 성 묘사를 하고 있지만 ‘파괴적이고도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이라는 카피나 ‘치명적인 성애 묘사’라는 문구는 조금 오버스럽다. 남성 도우미와 그 도우미를 사는 젊은 처자라는 설정은 낯설지만 출구 없는 젊음, 이라는 식상한 문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오지랖 넓지 못한 젊음이 그 젊음들끼리만 소통할 때, 그 출구는 그들 내부를 향해서만 열리게 되는 것일터, 또다른 우리들 젊음의 자화상이다.



제리 / 김혜나 / 민음사 / 228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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