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너는 모른다》

어둡고 습하고 끈적한 우리 가족 내부의 독소와 조우하라, 막장 드라마처럼

by 우주에부는바람

주류문학의 내부에서 취하는 막장 드라마의 제스처라고 해야 할까.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들리는 소문이나 기사들로 예측컨대) 우리들의 안방을 점령한 대부분의 일일 드라마는 우리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방식, 아니 우리 주변 다른 가족의 드러난 치부를 편안하게 감상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현혹하는 중이고 소설 또한 그러한 트렌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드라마를 들여다 보아도 우리는 우리 가족 내부의 문제를 알 수 없다. 그러니 <너는 모른다>라는 소설의 제목은 어떤 면에서는 맞다. 우리는 소설 속 유지네 가족을 알 수 없을뿐더러,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 가족을 돌이켜보는 것에도 성공하기 힘들어 보인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하지만 그 결말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형식적 미스테이크는 차지하고라도 말이다.


“... 십 년 동안 그들은 사랑을 지속했고, 지금은 십 년에 걸쳐 이별하는 중이었다...”


소설의 중심에는 진옥영이라는 여인이 있다. 화교 출신의 여인은 첫사랑인 밍과의 사랑을 접고 김상호라는 인물과 결혼을 한 후, 유지라는 이름의 예쁜 딸을 낳았고 금지옥엽 키워왔다. 물론 다분히 막장 드라마스럽게도 김상호와 결혼을 할 당시 진옥영은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뉘앙스 상으로 보아 그 아이는 밍과의 사이에서 잉태되었다.


이제 김유지는 열한 살이 되었고, 김상호의 전처 소생인 혜성은 대학생이며 있는 듯 없는 듯 이들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혜성의 누나인 은성은 집을 나가 잔뜩 망가진 채 성격파탄자의 전형처럼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고 뭇남성의 사랑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표면상으로는 잔잔해보였던 이들 가족은 그러나 어느 날 유지가 사라지면서 격랑 속으로 던져지고, 잔뜩 뒤집어진 바다처럼 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이가 짐작하는 건 겨우 그뿐이었다. 타인을 겨냥한 악의는 어쩌면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 풍선 같았다. 시가이지난다고 저절로 쪼그라들지 않았다. 뻥 터져버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소설은 혜성과 은성과 옥영과 상호의 시점을 거쳐 유지의 시점에까지 다다른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예술 영재 취급을 받는 유지이지만,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유지,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는 없다. 스스로 집을 나가는 장면이 CCTV에 찍힌 유지, 사라진 돈 봉투 등을 고려한다면 누군가에 의한 납치라고 단정짓기에 정황상 무리가 따르지만 가족들은 서둘러 납치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두들 우왕좌왕한다. 유지의 사라짐을 통하여 드디어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 다시 십 년이 지났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나고, 이십 년이 넘었다. 각각 스무 번씩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꿈틀대며 몸을 바꿀 때마다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리는 그 희박한 확률처럼, 그들이 아직 같이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만에 있는 유지의 유전적 아버지인 밍이 가세하고, 유복하기 그지없었던 이들의 삶을 가능케했던 김상호가 저지르고 있는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가 밝혀지면서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너는 모른다> 라는 제목이 우리들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꾸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모자라서 추궁이라도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 나도 알아, 곧 죽어도 우리 때문에 8학군에서 버티느라고 엄마아빠 아등바등 살아온 거. 그치만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대상이 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줄 아니? 자식이니까 아무 대가를 안 바란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그렇게 쏟아 붓고 본전 생각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 근데 누가 나 때문에 희생하랬냐고. 왜 남의 인생에 사사건건 간섭이야! ... 다 사유재산의 폐해야. 자기 자식을, 은행빚 내서 산 아파트처럼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소설 속 혜성의 여자 친구인 다희의 말에서 유추하는 바, 혹은 지금까지 보여온 작가의 소설의 행보를 돌이켜 보았을 때, 살만하다고 여겨지는 우리들 중산층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가족 내부 그리고 사회를 향하여 뿌려대는 독소가 이 소설의 향이 아닐까. 어둡고 습하며 끈적하기가 장마철 날씨와 진배 없는 소설의 분위기는 그나마 이 독소와 적절히 반응한다.



너는 모른다 / 정이현 / 문학동네 / 496쪽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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