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이 허겁지겁 작가를 만났을 때...
넘쳐나는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작가일까. 그러나 아직 이 작가에게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넘쳐나는 상상력, 이 아니라 바로 주체하지 못하는, 이라는 지점이다. 우리들 일상의 주변에 허름하게 방치되어 있는 물탱크를 소설의 주요 재료로 끌어들인 상상력에는 큰 점수를 주어야 하겠으나, 그러한 재료를 사용하는 부분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서툰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부분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옥상에 쓸모없이 방치된 물탱크들을 주거 공간으로 개조해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고 싶다. 그런 다음 물탱크 거주자들과 연대해 물탱크공화국을 세울 것이다.”
예를 들어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어느 날 한 괴짜 공학박사를 인터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인터뷰에서 ‘물탱크공화국’이라는 엉뚱한 언급을 한다. 바로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옥탑방에 있는 물탱크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물탱크에서 한 사내를 만나게 된다. 이쯤되면 그 인터뷰한 공학박사와 이 물탱크의 어떤 상관 관계를 보여줄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니까 그저 이 공학박사는 물탱크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소설의 내부에서 흘낏 내비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일 뿐인 것으로 소설의 다른 부분들과는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소설 내내 등장시키는 골프채라는 도구의 위치도 어정쩡하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장 상사와 우연히 들른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허황된 지름신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소유하게 된 비싼 골프 클립일 뿐이다. 그런데 이 의미없는 골프 클립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옥탑방과 물탱크라는 자본주의의 하층을 대변하는 상징에 대비시키는 것으로 골프 클립을 등장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이 또한 실패한 사용의 실례일 뿐이다.
“이 안에서는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느리지요. 아주 느리게 흐릅니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아니, 시간이라는 관념조차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히려 작가가 천착해야 했던 것은 마치 우리들 상상 속의 섬인 이어도를 연상시키게 하는 이 물탱크라는 지점에서의 시간의 속도였을지도 모른다. 잠깐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 있는 주인공을 들여다보면서 오래된 이야기의 현대적 변용에 대해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그 이후에 이 부분은 그만 시들해져 버리고 만다. 설화의 내용은 적절하게 희석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두둥실 분리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이제부턴 당신이 이 섬의 주인입니다... 잘 있어요. 그리고 행운을 빌어요. 하지만 친구, 지금까지의 당신은 그만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요. 그래야 이 섬의 온전한 주민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 시도만큼은 그럴싸 하다고 추켜세우지 않을 수 없다. 저 옛날 이어도라는 섬이 그랬듯, 현실에서의 고난을 잊게 만드는 물탱크라는 공간은 그렇게 우리들을 현실로부터 훌쩍 들어낸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그 이후의 시간은 분리되고, 그곳에 가기 전의 나와 그곳에 갔다 온 후의 나는 변태한다. 세상 또는 사람들과의 제대로 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우리들 현대인의 불안감이 물탱크 정류장이라는 공간을 창조했다, 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태기수 / 물탱크 정류장 / 생각의 나무 / 235쪽 / 2010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