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의 법칙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정리...
추리 소설에 대한 추리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추리 소설 혹은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천착하면서 끊임없이 걸작들을 쏟아내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첫 번째 장편인 <방과 후> 를 내놓은 1986년에서 십여 년이 흐른 뒤인 1996년 발표한 <명탐정의 규칙>은 작가 자신이 가지는 추리 소설에 대한 생각을 소설의 안과 밖을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개진하고 있다.
“그럼 소설의 세계로 돌아가죠.”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오가와라 반조 경감이다. 살인 사건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일선 형사인 그가 나타나는 현장에는 그리고 반드시 이 사람, 덴카이치 다이고로 또한 나타난다. ‘낡아빠진 양복에 더부룩한 머리, 연륜이 쌓인 지팡이’라는 트레이드마크를 가지고 있는 탐정인 그는 ‘생초보 탐정’이 끼어들 자리는 아니라는 오가와라 반조 경감의 비아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거들먹거리며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그것은 소설 속 형사와 탐정의 정해진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 속의 오가왈 반조 경감은 이렇게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
“이런 탐정 소설에서 우리 조연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절대로 명탐정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덴카이치 탐정이 진실에 접근할 때까지 본질에서 벗어난 수사만 하면서 시간을 벌어 줘야 한다.”
이렇게 탐정과 형사, 주연과 조연, 총명한 사건 해결자와 잘난 체하는 무능자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두 인물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하지만 이들의 충돌은 소설 속 사건의 내부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건을 벗어난 지점에서도 때때로 충돌하고, 추리 소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추리 소설의 트릭들을 돌파해나간다.
소설에는 모두 열 두 개의 사건이 실려 있다. 첫 번째는 그 이름도 유명한 밀실 살인을 테마로 하는 ‘밀실 선언-트릭의 제왕’이다. 뒤를 이어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Who done it-의외의 범인’, 산 속의 갇힌 산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폐쇄된 산장의 비밀-무대를 고립시키는 이유’, 살해당한 이가 죽으면서 적은 메시지에 담긴 비밀을 파헤치는 ‘최후의 한마디-다잉(Dying) 메시지’와 같은 소설들이 뒤를 잇는다. 그야말로 추리 소설에서 나올 수 있는 사건들을 다양한 패턴에 따라 정리해 놓았다고 해야 할까.
따지고보면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렇게 자신이 포함된 장르의 법칙을 설명하는 것은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마치 마술사가 자신의 마술 비법을 말로 설명해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이러한 장르의 법칙을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공포 영화의 법칙을 떡 주무르듯 주무른 <스크림>이라는 영화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작품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행보를 보면 그의 이 자신감이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추리 소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패턴화된 양식들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전의 추리 소설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쉽사리 침범하기 힘든 이 추리 매니아 타입의 작가는 이미 70~80여권의 소설을 썼다는데, 그 머릿속이 궁금할 따름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역 / 명탐정의 규칙 (名探偵のオキテ) / 재인 / 372쪽 / 2010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