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그럼에도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우리 동네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이런 책 한 권이 세계의 비열한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모른다. 거기까지만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걸어 다니는 동네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비열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개인들이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이제 이년여가 조금 넘었다. 그 직전 동네에서는 무려 십여 년을 살았다. 그 동네에 사는 동안 결혼을 하였고,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출출한 새벽이면 찾아가던 기계 우동집이 있었고, 난 그곳에서 드문드문 소주를 마셨다. 눈이 쌓인 어느 날에는 혼자 살던 그곳을 찾은 친구들과 함께 손썰매를 끌었고, 억수같은 비가 내리던 어느 날에는 스트리킹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하였다.


“누구 인생이든 소설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랬지. 소설 되는 사람 있고, 소설 안 되는 사람 있고, 그러면 소설이 잘못된 거지 그 인생이 잘못된 거겠냐고. 뭐 그런 말은 했지.”


동네 구석구석을 알고 있었고, 슈퍼마켓 아줌마나 닭도리탕집 아저씨를 비롯한 동네 주민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냈다. 룸쌀롱 상무 출신이라는 옆집 사내에게 붙잡혀 그의 방문 앞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였고, 전직 이통사 개발부서에서 근무했다는 집주인의 이혼한 첫째 아들에게 이끌려 동네 호프집에서 번데기 안주와 함께 늦은 새벽까지 한탄 섞인 그의 인생 역정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이 동네에서 죽은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일 년쯤 전이다. 일 박 이 일로 지방 출장을 다녀온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눈에는 죽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낮의 거리를 산 사람처럼 걸어 다녔다... 내가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이 동네뿐이다. 이 동네만이 죽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지, 내가 볼 수 있는 범위가 이 동네에 한정돼 있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물론 그 동네에 사는 동안 산 사람은 원 없이 만났으나, 죽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죽은 사람처럼 너풀거리는 걸음으로 동네를 배회한 적은 많았으나, 죽은 사람 같은 것과 죽은 사람이 다른 까닭인지 죽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동네에 사는 동안 소설 같은 일들은 충분히 겪었으니, 느닷없이 죽은 사람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소설 속 주인공의 설정은 어딘가 어설프다.


“책장 위에 아내의 문패가 보인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못 듣고 있는 것이리라.”


대필 작가의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었고 어느날 벤치에서 스러진 주인공의 아내, 주인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태인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얼마 뒤 목숨을 잃은 노인 등이 가지는 개성들은 출중하나 이들의 연결이 어딘지 느슨하다.‘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과 같은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자꾸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에도 적당한 이유가 따라 붙지 않는다. 인과 관계가 희미하다고 하여 몽환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바람이 불었다. 목련 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후두두 흔들렸다. 수십 개의 나뭇잎들이 저마다의 몸짓과 표정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잎은 저마다 하나의 웃음이고, 뜀박질이고, 눈물이고, 기도였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욕망이고 회한이었다...”


어쩌면 중앙일보에서 관장하는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스스로를 작은 동네에 가두고, 세상과의 연결에 아둔하기만 한 주인공이 자꾸만 우리들에게 그냥 되는대로 살으라는 정치적 손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과거의 군부 독재나 현재의 명박 독재는 우리들이 정치에 질색을 하고 그래서 정치로부터 멀어지겠노라 다짐을 하는 순간 가능해지고 견고해지는 속성을 지니는 것 아닌가.


마침 오늘은 무려 여덟 장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지방 선거가 있는 날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조금 있으면 출구조사가 발표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직선제라는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았을 (우리는 불과 이십 오년 전만 하여도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에 의하여 대통령을 뽑았다) 젊은 층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를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조마조마하다. 이제는 화염병 들고 거리를 뛰어다닐 힘도 남아 있지 않은데 말이다...



임영태 /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 / 297쪽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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