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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스 오르츠 《침대 밑에 사는 여자》

침대 밑으로부터,띄엄띄엄 쉼표를 사이에 두고,들려오는 이 여자의 사는 법

by 우주에부는바람

“린다 마리아 차파텍, 1975년생, 165센티미터, 갈색 머리에 초록빛 눈. 그게, 린은 생각한다, 나일까?”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제 사회로 복귀한 린은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공식화되어 있는, 육체적으로 통계화되어 있는 자기 자신은,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말 나인가... 음습한 괴짜라고 할 수 있는 린은 그렇게 사회에 복귀를 하고 이제 예전 남자친구인 하인츠를 통하여 호텔 청소 일을 얻게 된다.


“... 린은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린은 손님의 파자마 상의를 자신의 작업복 위에 입고 있다. 단추를 채운 채로. 소매가 너무 길다. 열쇠 구멍에 열쇠 꽂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손님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린은? 사라졌다... 마침내 심장이 생명의 신호를 내보낸다... 침대 밑. 더블베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견 평범해 보이던, 그러니까 사회적인 낙오자라고 볼 수있는 한 여성의 자립(?)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 뭐 이렇게 진행되는가 싶던, 소설은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손님방에서 늑장을 부리던 린이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침대 아래로 스며들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먼지 가득한 숨기 좋은 장소쯤으로 여겨질 침대 밑이지만 이제 린에게는 그곳이 신세계가 되는 것이다.


“... 침대 밑, 거기는 딱딱해, 하지만 그 때문에 편안해, 그곳, 침대 밑, 거기는 비좁아, 하지만 그 때문에 넓어, 그곳, 침대 밑, 거기서 당신은 전혀 보지 못했던 일들을 목격할 거야, 그곳, 침대 밑, 거기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져...”


그리고 이제 그녀는 정기적으로 손님의 방, 그 침대의 밑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는 집에서와는 달리 편하게 잠을 청하고, 손님이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녀는 침대 밑 그 좁은 공간을 통하여 바라보는 그 방의 주인의 일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진다. 돌아다니는 손님의 발을 바라보고 그가 내쉬는 숨을 확인하고 움푹 내려앉는 시트의 무게를 느낀다.


“... 우리에게 사물의 절반은 항상 숨겨져 있어. 병에 든 생수, 연필, 램프, 그 모든 걸 우리는 절반밖에 보지 못해, 단지 앞에서, 비스듬하게 앞에서, 혹은 위에서, 절대로 완벽하게 보지 못해, 절대로 전체를 보진 못해. 진짜 모습, 사물의 완전한 모습은 어둠 속에 있어. 우리 모두는 시야가 제한된 존재야...”


그리고 린은 손님의 방으로 섹스를 팔기 위하여 들른 키아라를 알게 되고, 그 키아라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게 되며, 키아라와 섹스 이상의 관계를 갖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침대 밑으로부터 시작된 키아라와의 관계는 그렇게 호텔을 벗어나 린의 집으로 이어지고, 키아라와의 여행을 통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욕망으로 린을 이끈다.


“...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린은 생각한다, 시간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항상 앞으로만 간다, 인생에는 한 가지 방향만 있을 뿐이다, 다른 방향이 있다면 그것은 먼지다... 키아라? 응? 청소할 때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 아니. 뭐든지 다시 더러워진다는 사실.”


그리 두껍지 않은 소설은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의 여성 린으로 인하여 독특한 매력을 갖는다. 쉼표로 토막나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문체 또한 린 혹은 린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적절하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쉼 없이 스스로를 몰아 붙이는 현대인들과 비견되는, 자신의 삶에 띄엄띄엄 쉼표를 부여한 것만 같은 린이 불어넣는 짧고 거친 호흡이 유독 눈에 띈다.



마쿠스 오르츠 / 김요한 역 / 침대 밑에 사는 여자 (Das Zimmermadchen) / 살림출판사 / 143쪽 / 20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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