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하고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이 작가의 불온한 시선에 주목...
보통은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의 하나의 작품명을 소설집의 제목으로 뽑는 사례에 비추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소설집의 제목은 조금 뜬금없어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 제목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삼십대 중반의 여성인 작가는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파격으로 가득한 소설들을 써왔고, 그 소설들은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형태로는 거의 말하여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열세 살」.
대합실을 무대로 하여 살아가는 노숙자인 엄마와 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엄마가 엎드린 계단에는 그때처럼 꽃을 파는 아가씨, 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았다. 또각또각, 나는 고개 숙여 엎드린 엄마 앞에 섰다.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가 손을 조금 더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내가 가진 돈을 전부 바구니 속에 넣었다...” 딸을 남겨 두고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을 하는 엄마, 엄마를 기다리며 간간히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딸... 그러한 딸에게 접근을 한 ‘흰얼굴’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노숙자로 야생에 가깝게 살아가는 이들의 비위생적인 삶보다도 이들의 삶을 향하여 사냥꾼의 시선을 들이미는 ‘흰얼굴’의 삶에 더욱 비위가 상한다.
「엄마들」.
아버지로 인하여 떠안게 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욕탕 일을 하는 엄마, 그리고 군대에 간 동생, 사라진 아빠,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나... “...26세, L대 법대생. 165cm, 54kg. 술, 담배 안 함. 유전적 질병, 정신적 결함 없음. 남자 친구 없음. 브로커 없는 직접 거래 요망...” 이제 나는 임신하는 기간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여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자신이 벌 수 있는 최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오천만원이라는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이제 그 아이의 엄마가 될 여자의 보호 아래,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피폐한 삶을 거두면서, 그녀 자신은 시한부인 엄마가 되어간다.
「순애보」.
아빠 몰래 동생을 가진 엄마를 따라 집을 나섰던 나는 고속도로 휴게실에 버려지고, 그곳에서 꿩고기를 파는 사내와 한 트럭을 타게 된다. “... 피식, 웃음이 났다. 잊겠다고 잊히는가. 그래서 나는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나는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니까, 아빠도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러면 됐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렵지 않게 꿩을 죽이고 살을 발라낼 수 있게 되었으며, 아버지인지 자신의 사내인지 모를 남자와 살고 있고, 치우라는 말더듬이 청년의 구애를 받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낳지만, 낳지만... 끔찍한 소설의 진행만큼이나 끔찍한 결말... 잠깐 작가의 의식구조가 의심스러웠을 정도이다.
「환상통」.
암으로 자궁을 들어낸 나,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알게 된 엄마의 자궁암... 나는 나의 자궁을 들어내면서 남편도 들어내고, 엄마의 죽음까지를 맞이한다. “... 생리가 시작될 때면 식욕이 솟구치곤 했다. 쌀은 안쳤다. 실존하지 않지만 기억을 끄집어내는 통증이 몰려왔다...” 자궁은 사라졌지만 아직 그 기억은 남아 있게 되다니... 그리고 나는 이제 암의 진단을 받으러 간 길에, 임산부의 팔짱을 끼고 있는 남편의 실루엣을 햇빛 좋은 날에 보게 된다.
「오늘처럼 고요히」.
나는 혜경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와 함께 모텔에 들어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들킬까 두려워하지도 않던 어느 날, 나는 모텔에서 남편을 만나고 남편은 들고 있던 칼을 떨군다. 그리고 얼마뒤 남편과 아이는 죽었고, 남편의 형이기도 한 병운이 나를, 아니 나의 몸뚱이를 거둔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아이 대신 나와 병원의 거처에 혜경이 들어선다. 병운과 나, 그리고 병운과 혜경, 그리고 나와 혜경이라는 설명할 길 없는 관계는 드디어 병원을 그가 운영하는 정육점의 냉동고 속으로 몰아 넣는다.
「손」.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머물게 된 누나의 집으로 불쑥 들어가 살기 시작한 서른넷의 남동생... “딩동,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구멍이 열리고 우유를 내려놓는 손이 보였다. 흡, 나는 숨을 들이쉬며 팔을 뻗었다... 손을 잡았다. 작고 차가웠다. 놀라 버둥거리는 손을 나는 힘껏 쥐었다. 벗어나려고 세차게 움직일수록 나는 더 힘을 주었다. 손은 내 손아귀를 이기지 못했다. 손은 결국 포기하고 내 손에 잡혀 가만히 있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손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셈이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인터넷이나 들락거리며 엄마가 빼돌리는 아버지의 돈을 근근히 생활을 하던 내게, 새벽 현관문의 우유 투입구로 들어오는 손만이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 손만이 세상과 자신을 유일하게 연결시키는 도구라도 된 것처럼...
「막」.
바람나서 집을 나간 엄마와 떠돌이 아버지, 주변 사람 모두를 신불자로 만든 오빠와 나, 그리고 이 못난 가족을 부여잡고 있던 할머니... 결국 아버지는 어느날 노모를 때려서 숨지게 하였지만 나는 무감각하게 이를 받아들이며, 어린이 연극 전용의 지방 소극단의 오래된 단원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부여잡고 있다. 여기에 같은 연극단 단원인 어린 정국, 단장의 주선으로 만나는 섹스 파트너들 중 하나인 상원, 갑작스레 나타난 나의 엄마와 엄마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오빠까지... 막이 올라가고 그 자리에 보여지는 어여쁜 동화의 세계, 하지만 막이 내려가면 그곳엔 처절한 일상의 어두움만이 가득하다.
「하루」.
분홍색에 집착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흔하디 흔한 어느 중산층 아파트 거주 아줌마의 하루는 너무 일상적이다. 하지만 그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가려진 그녀의 허위 의식은 불안하다 못해 불온하기까지 하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를 켰다. 얼음물 한 잔을 마시고, 믹스 커피를 탔다. 블로그에 들어가 방문자 수를 확인하고 댓글을 확인했다. 댓글은 밤에 남긴다. 식구들이 잠든 밤에 나 혼자 깨어 있는 설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접속하는 것으로 보이면 안 되었다. 나는 일상이 시들해서 블로그에 목맨 아줌마가 되기 싫었다.”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듣게 되는 지환 모의 자살소식... 그리고 몇 차례 지환 모와 어울리는 것을 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는 그녀와 친했느냐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부인을 거듭하는 나... 자기를 제외한 모두에게 무감한 우리들의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소설 속 나의 하루이다.
불온함이 물씬 풍기는 이 여성 작가는 자신의 성(性)을 대상으로 하여 외과 의사처럼 매쓰를 들이댄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거나 우회적인 투약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일단 절개하고 노골적으로 그 속을 보이는 것이 속편하다는 식이다. 그 방법론이 이끌어내는 실질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론을 사용하는 작가 덕에 뇌가 활짝 열리는 것처럼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일단 나쁘지 않다.
김이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문학과지성사 / 283쪽 / 2010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