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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에버르트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

이 세상에는 과학 유머라는 것이 존재하나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카바레티스트라는 것이 있나보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카바레라는 소극장 형태의 무대에서 말과 노래를 이용하여 정치와 세태에 대한 풍자극을 선보이는 카바레티스트(카바레 아티스트)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빈스 에버르트는 물리학을 전공한 이후 경영 컨설턴트와 마케팅 전략 연구가를 거쳐 이제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십분 활용한 카바레티스트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몰랐지만 주변에 있는 기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오늘날에는 정반대다. 지금은 여행용 자명종에 예전 아폴로 11호 우주선보다 더 많은 전자제품이 들어 있다...”


작가의 유머는 일단 꽤 시니컬하다. 그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에 대하여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삶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문명 발달의 결과물들이 때로는 우리들 자신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유머의 소재로 삼는다.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그러한 자부심 자체가 바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매일 정보가 번개처럼 우리에게 내리친다. 텔레비전이 발명되기 전에는 아마 평생 알게 되는 사람이라야 다 해봤자 200명 남짓이었다. 오늘날에는 텔레비전으로 하룻저녁에도 그 정도 수의 사람과 접촉할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는 제쳐두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과학 기술의 발달에 반대하는 생태주의자이거나 환경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웃기는 사람이고, 자신이 가자 잘 웃길 수 있는 소재로 과학을 선택한 사람이며, 그렇게 선택한 과학을 비꼬아줌으로써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종종 그는 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빼먹지 않고 전달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웃기게 전달한다.


“자연과학에 대한 무관심은 고대문명들을 파멸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마야 문명이 멸망한 결정적 원인은 9세기에 큰 가뭄으로 많은 마야인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었다. 만약 마야인들이 몇 년에 걸쳐 제대로 날씨를 기록했더라면 재해를 너끈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대신에 마야인들은 무엇을 기록했던가? 왕들의 끝없는 영웅다이었다! 말하자면 마야인들은 과학전문지보다 대중연예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멸망했다.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예다.”


그의 냉소는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도 한다. 카바레티스트인 그는 우리들의 가식과 허위에 대해서도 조롱한다.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글로벌한 대기업을 지목하고 있으면서도, 꾸준하게 그들이 생산하는 상품들을 소비함으로써 그들을 살찌우는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다. 물론 이 독일 카바레티스트의 조롱에서 독자인 나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저임금, 고용 축소, 환경 파괴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지만, 그런 짓을 몸소 실천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구매한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우리가 즐겨 비난하는 최고경영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무자비한 세계화와 가격 압박으로 결국 모든 기업이 생산 시설을 동아시아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진짜 메뚜기는 노키아 사장이나 헤지펀드 매니저가 아니다. 진짜 메뚜기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하라’ 느니 ‘21세기 신인문학 특강’ 이라느니 거창한 수식어들로 책을 포장하고 있지만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엉뚱하게 마케팅 전략을 짰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있어 보이는 인문학 서적에 대한 사람들의 소구가 있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실제 내용은 까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과학 특강에 가깝다. 그리고 그 특강의 소재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고 있으니 소탈하기도 하다.


“... 몇몇 마초들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라도, 모든 인간이 발생 초기에는 일단 여성적이다. 남녀 발달의 바탕이 되는 신체와 뇌의 기본 설계도는 언제나 여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태아가 8주가 되고 나서야 남성 Y염색체가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라는 신호를 보내 남성적 본질이 발현된다. 거짓말 같은가? 존 웨인과 브루스 윌리스조차 인생의 처음 두 달 동안 작고 귀여운 소녀였다!...”


현대 과학으로 접어들수록 일반인과 과학 사이의 벽은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티븐 호킹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알고 있는 사실 보다는 그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더 많을터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과학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준비 자세를 갖출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에 붙는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어느 탐식자의 인문학 수다‘라는 거창한 수사야말로 창피하다. 작가는 이렇게 범우주적으로 겸손한데 말이다.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틀림없이 많이 있다. 계속 이런 상태일 가능성도 있다. 나이가 140억 살이고 크기가 100억 광년인 우주에서는 별로 창피한 일도 아니다.”



빈스 에버르트 / 조경수 역 /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 :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어느 탐식자의 인문학 수다 (Denken Sie Selbst! Sonst Tun Es Andere Fur Sie) / 이순 / 20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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