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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다케후미 《프리즌 트릭》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도 트릭을 포기하지 않으리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일본 소설 좀 그만 사라는 아내의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매번 몇 권의 일본 소설들을 구입목록에 넣고 만다. 이번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라는 이름 때문에 이 책을 목록에 넣었다. 좋아라하는 두 명의 미스터리 추리물 작가가 동시에 추천을 하고, 에도가와 란포상까지 탔다고 하니 구미가 슬슬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쩌랴, 냉큼 또 바구니에 넣는 수밖에...


제목에도 ‘트릭’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 추리 소설은 끊임없는 트릭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건의 시작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주로 형을 사는 이치하라 교도소이다. 큰 문제만 발생시키지 않으면 대부분 형을 경감 받아 일찍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교도소인데, 어느 날 이 교도소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게다가 이것은 밀실 살인이다. 그러니까 들어오고 (엉뚱하게 뜯어진 방충망을 제외한다면) 나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밀실 살인의 추리극은 살인한 자 (이즈시카 미쓰루)와 살해당한 자 (미야자키 하루오)가 뒤바뀌고, 게다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는 이즈시카 미쓰루는 몇 개월 전부터 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그렇게 교도소 내부의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은 교도소 담장을 넘고, 서서히 살인을 저지른 이즈시카 미쓰루는 우체국 직원 다나카 이치로를 지나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를 둔 무라카미 고스케에게로 그 시선을 옮겨 간다.


여기에 이즈시카와 미야자키가 살해당하던 날 교도소를 순찰하였던 교도관 노다가 죽고, 연이어 아즈마 토마토 팜이라는 회사의 사장이자 시장인 가사하라가 죽으면서 추리 소설은 이제 사회물로 옮겨간다. 지역민들의 돈으로 운영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불법을 일삼았던 기업가와 정치가의 결탁,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가녀린 여인의 죽음이라는 설정으로 소설은 마무리 되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한다.


“... 한번 판결이 내려진 일은 두 번 다시 다루지 않는다. 요전에는 착각해서 교통사고라고 했는데 사실은 살인사건이었으니까 재판 다시 해주세요, 이럴 수는 없잖아...”


하지만 소설의 ‘트릭’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의 진실에 근접하였으나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범인에게는 접근할 수 없었던 무라카미 고스케에게 살인을 부추기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도다 가즈요시라는 존재가 또 하나의 트릭이 되어 교통사고가 일어나던 날 밤이 촬영된 영상의 지극히 짧은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이름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예를 들어 죽은 미야자키와 형을 마치고 나온 나카지마, 야지마와 다케다와 같은 형사들, 정치인 다카하시와 가사하라 시장 등등) 자칫 잘못하면 스토리 전개의 끈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지만 (외국의 독자에게나 그렇겠지..) 추리 소설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덕목들인긴장감과 호기심을 적절히 투여하면서도 동시에 끊이지 않는 트릭을 등장시키고 있다. 살해에 공을 들인 범인들의 술수와 등장인물들의 치밀한 관계망에 공을 들인 작가의 술수가 모두 흥미롭다.



엔도 다케후미 / 김소영 역 / 프리즌 트릭 (三十九條の過失) / 살림 / 360쪽 / 20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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