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파란만장 작가의 삶이 블랙 코미디의 정수가 되어...
저지 코진스키의 생을 설명하자면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부모가 있음에도 전쟁고아가 되었다가 부모를 되찾았지만 실어증에 걸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다음 언어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공산화된 조국 폴란드를 떠나기 위해 각종 서류를 위조하고 허구로 만들어낸 인물들이 정보를 주고 받도록 만든다. 드디어 그는 미국 망명에 성공하게 된다. 어쩌면 여기까지기 그의 인생의 전반부이다.
“챈스가 정원을 좋아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때든 좁다란 샛길이나 덤불과 나무 사이에 있다 보면, 앞으로 가고 있는지 뒤로 가고 있는지, 아까 지난 곳보다 여기가 앞인지 뒤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이리저리 떠돌 수 있었다. 그저 자라는 식물처럼, 그만의 시간 속에서 움직였고, 그것만이 중요했다.” (pp.12~13)
미국에 망명하였으나 영어를 모르는 그는 주차장 안내원 페인트공, 청소부,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다 29세의 저지 코진스키는 40세의 재벌 미망인과 우연히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상류층의 생활을 즐기지 않았고 결혼 생활은 4년만에 파경을 맞는다. 그러다 1965년 첫 번째 작품 《The Painted Bird(페인트로 얼룩진 새)》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Being There(정원사 챈스의 외출)》은 저지 코진스키의 세 번째 작품이다.
“챈스는 집으로 들어가 TV를 켰다. TV는 스스로의 빛과 색과 시간을 창조했다. 모든 초목을 끝없이 아래로 처지게 하는 중력의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무엇이든 TV에 나오는 것들은 언제나 얽히고설키면서도 언제나 잘 풀렸다... 그는 채널을 바꿔서 자신도 바꿀 수 있었다. 정원의 식물들이 생장의 단계를 거치듯, 챈스도 단계들을 거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다이얼을 앞뒤로 돌려가며 내키는 만큼 빨리 변할 수 있었다... 챈스는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원 밖의 세상이, 햇비과 신선한 공기의 보슬비처럼, 챈스 속으로 들어왔고, 챈스도 TV 영상처럼 세상 속으로 둥둥 흘러들었다. 그에게 보이지도 않고 그가 이름을 댈 수도 없는 어떤 힘에 떠밀려서.” (pp.13~14)
나는 《정원사 챈스의 외출》에 저지 코진스키의 삶이 가장 많이 얼룩처럼 스며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아예 글을 모른다는 설정은 미국으로 망명 후 영어를 하지 못한 저지 코진스키를 떠올리게 되고, 우연한 차 사고 이후 영향력 있는 재력가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는 설정은 어쩌면 미국에서 자기 자신이 재벌의 미망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현실과 멀지 않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재력가의 나이 차이 나는 아내는 챈스를 꼬시려고 한다.
“말씀 한 번 잘했소, 가디너 씨. 촌시라고 불러도 되겠지? 정원사라! 진정한 비즈니스맨을 표현하는 말로 이보다 더 완벽한 말이 있을까! 맨손의 노동으로 자갈밭을 열매 맺는 땅으로 바꾸는 사람! 척박한 땅에 이마에서 흐르는 땀으로 물을 주고, 자신의 가족과 지역사회에 가치 있는 장소를 창조하는 사람! 그래요, 촌시, 기막힌 비유였소! 생산적인 비즈니스맨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포도밭에서 힘써 일하는 일꾼이오!” (p.58)
그리고 이제 소설 속 챈스는 일자무식인 (정원사라는) 자신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미국 대통령과 짧은 만남을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하여 TV에 출연하게 된다. TV에서도 챈스는 그저 정원사라는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을 근간으로 몇 마디를 내비칠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고, 그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고, 이제 더욱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가디너는 어떤가요? 우리가 방금 권위 있는 분의 입을 통해서 들은 말을 반복해도 될까요? 가디너는 과거가 없다! 따라서 그는 누구에게도 비호감이 아니며, 또 비호감이 될 일도 없어요! 비호감은커녕, 사람도 호남이고, 말도 세련되게 하고, TV에서도 제법 하잖아요! 생각하는 것도 잘 들어보면 우리 편 같아요. 그거면 됐죠. 가디너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챈스(chance)예요.”(p.183)
소설 밖의 저지 코진스키는 그 유명한 찰스 맨슨 갱단의 살인으로부터(로만 폴란스키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비롯한 7명을 살해한) 목숨을 건진 이후 작가로서 충실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Being There’은 1979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직접 각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였던 저지 코진스키는 심장 질환으로 고통을 받다가 1991년 58세의 나이에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지 코진스키 Jerzy Kosinski / 이재경 역 / 정원사 챈스의 외출 (Being There) / 미래인 / 192쪽 / 2018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