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유년기를 거쳐 음울한 바르셀로나를 떠도는 한 작가의 영혼과 사랑.
언젠가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이 작가의 <바람의 그림자>라는 소설에 대한 칭찬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대중 소설의 향이 물씬 풍기는 그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아서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작가의 이번 소설을 읽고 난 지금은 그때 그 소설을 읽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작가의 소설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장점들을 두루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한 구조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유효하고,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상들에 대한 묘사 또한 전혀 서툴지 않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소재, 그러니까 책 혹은 문학을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전혀 지루한 구석이 없다. 두 권을 합하여 팔백 페이지에 이르지만 한 번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면 알아서 끄트머리까지 읽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주인공인 다비드 마르틴이 대중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부에서 마르틴은 유명 귀족이며 마르틴의 정신적 그리고 물질적인 스승 노릇을 한 페드로 비달의 도움을 받아 신문사를 나와 이그나티우스 B. 삼손이라는 필명으로 대중 소설을 쓰는 과정과 탑에 둥지를 트는 과정, 그리고 그 와중에도 능력이 부족한 스승 페드로 비달을 위하여 (마르틴 자신이 사랑한) 그의 비서 크리스티나와 함께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와 함께 상업적인 소설을 쓰는 그에게 안드레아스 코렐리라는 인물은 소설 쓰기를 제안해오고, 결국 자신이 사랑한 크리스티나는 페드로 비달과의 결혼으로 그를 배신한다.
죽음 이어진 2부에서 마르틴은 이제 어린 시절 자신을 도왔던 서점 주인 셈페레의 부탁으로 이사벨라 라는 문학소녀를 비서로 두고 안드레아스 코렐리가 제안한 소설 쓰기에 몰입한다. 그 사이 셈페레를 따라가서 도착한 ‘잊힌 책들의 묘지’에서 자신이 고른 책과 자신이 사는 집의 주인이 일치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코렐리씨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 살인 사건에 의해 경찰의 주목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3부에 접어들면 이제 소설은 마르틴 자신이 받은 소설 제안을 그 전에 받았을지도 모르는 작가 디에고 마를라스카 폰힐루피,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사람들에 대한 조사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크리스티나는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비서였던 이사벨라는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다비드 마르틴은 촘촘히 얽힌 사건을 풀고 난 이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도시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영혼을 구원할 소설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후견인,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쓰고 싶은 소설, 그러니까 갈등하는 작가와 이를 추동하는 후견인이라는이라는 설정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작품은 그렇게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그 사건들 곁에서 스러져간 사랑을 우아하게 배치해놓고 있다. 촘촘하게 묘사되는 바르셀로나 거리들의 우울한 풍광은 소설의 아낌없는 살이 되고, 이렇게 저렇게 엮이고 엮인 인물들 간의 관계는 피가 된다.
대중적인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만 문학적인 성취 또한 잊지 않으려 노력을 기울이는 듯한 작품은 어쩌면, 저잣거리에서 팔리는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문학을 반영한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었던 소설 속 주인공 다비드의 영혼에 기대고 있다. 모든 젊은 소설가들의 가슴 속에 깃들어 있는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로테스크한 소설 속 배경 앞에서도 쉽사리 스러지지 않는 것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 송병선 역 / 천사의 게임 (El juego dei angel) / 민음사 / 1권 436쪽, 2권 372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