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하고 발랄하면서 동시에 범상치 않았으며 신중하였던 작가에 대한 그리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으로는 열일곱 번째 작품이지만 노통브는 이번 작품이 예순세 번째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그러니까 아멜리 노통브는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첫 번째 소설을 쓴 이래로 거의 매년 한 편씩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 작가가 쓴 소설은 예순세 개의 작품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작가는 일년에 서너 편 정도의 소설을 써서 그 중 한 개만 발표하고 나머지는 서랍 속에다 차곡차곡 쌓아놓는다는 그런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렇게 무모하다싶은 다작에도 불구하고 발표한 모든 작품이 기발하고 참신하다, 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쉽기만 하다. 처음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흥분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녀가 발표하는 작품이 매번 기발하고 참신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발하고 참신한 소재들이 매번 성공적으로 독자인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멜리 노통브는 기발하고 참신한 소재(일지는 모르겠으나)를 평범하게 기술하고 있다. 독자들은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을 원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원한다. 기발하고 참신한 소재를 사용하느냐 진부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느냐는 그 다음의 요건이라고 봐야 한다.
“... 어젯밤엔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갔고, 거기서 웬 남자를 만나 누가 내 집에 와서 죽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들어 두었다. 오늘 아침에는 진짜로 모르는 사람이 내 집에 와서 죽었다...”
그런데 사실 옮긴이의 말처럼 마냥 참신하고 기발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음날 그와 똑같은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졌다, 라는 설정이 그렇게 참신하고 기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서 죽은 이후, 그 사람이 타고 온 차를 타고 그 사람의 집으로 돌아가서 그 사람의 죽음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의 친구인 양 (속내에는 그 사람인 양) 태연하게 생활을 한다, 라는 설정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나는 지그리드와 결혼식을 올릴 필요가 없었다. 나대신 올라프가 이미 다 해 두었으니까. 다행이었다. 행사라면 언제나 나는 치를 떨었다.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이 나는 지그리드의 남편이라는,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죽은 사람의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말을 하고, 누군가 죽은 사람과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에게 쫓겨 함께 피신을 하고, 결국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죽은 것으로 결론이 나고, 그래서 이제 자기 자신은 자신의 집에서 죽은 누군가가 되어, 그 죽은 사람의 아내의 남편 노릇을 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마냥 신기한 이야기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어쩌면 다작은 작가에게 함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작이 자랑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다작들의 사이에 태만한 작품이 끼어 있다면, 다작 또한 자랑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조금 더 천천히 쓰더라도 좀더 좋은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 아멜리 노통브의 초기 작품에서 느꼈던 긴장감, 그리고 진정성 가득한 참신함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재기발랄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던 초창기 아멜리 노통에 대한 (그러니까 아멜리 노통브가 아니라 아멜리 노통이라고 저자의 이름이 나왔던) 향수다.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역 / 왕자의 특권 (Le Fait du prince) / 문학세계사 / 182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