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서글픈 젊음의 초상...
*2010년 4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담배를 끊어본 적이 없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술은 한 달 정도 마시지 않고 버틴 적이 있지만 담배는 그런 금단의 욕심을 부려보지 못했다. 그러다 두주 전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삶은 어떨까, 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성인이 된 이후 줄곧 하루 한 갑 정도를 피워왔으니 하루 그 담배 한 갑 분량의 시간이 사라지는 경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호기심으로 그 이후 다시는 담배를 피지 않고 있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물론 그렇지는 못하다. 그 생각을 한 그 날부터 일주일 정도는 하루에 딱 한 개비씩만 담배를 피웠다. 딱히 금단 증상이 생기지도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꽤 들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자기 전에 피는 담배 한 개비를 포기하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쉬이 잠들지 못하는데 그 한 개비를 피우지 못해 잠에 빠져들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정말로 겁이 났던 것은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익숙해져 있는 모든 것들과 헤어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어쩌면 무언가가 되는 것에 겁이 났던 게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아했던 자신과 헤어지는 것에 겁이 났던 것이다.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렇게 담배를 피지 않고 있는 시간에 집어든 소설이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었다. 자기 전에 담배 한 개비를 딱 피우고, 얼른 침대에 뛰어올라 책을 집어들면 그 속에서 말보로 라이트와 레종 맨솔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그리고 덩달아 한창 담배 피우는 맛과 멋을 알아가던 시절의 나, 대학 시절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 내가 얻은 결론은 간단했다. 그것은 ‘나는 내가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혹은 내가 정말 어딘가로 가길 원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캠퍼스를 분주히 걷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질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것처럼 깨끗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지금과 똑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분주한 캠퍼스를, 나홀로 가시지 않은 술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절의 혼란스러움이 떠오르니 이 또한 담배 한 개비를 더 불렀다. 그렇게 하루에 한 개비로 줄었던 담배는 다시금 다섯 개비 정도로 불어났다. 여기에 더해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전 하루 한 갑의 시절로 되돌아가 별다른 마음 속 다툼 없이 담배를 피운다.
“...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는 친구를 만나러 그 편의점을 찾아갔다. 딸랑, 문이 열리고 편의점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선 순간, 그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그곳은 너무나 시원했고, 평화로웠고, 모든 게 있었다.”
그런가하면 소설 속에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며, 주인공인 내가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잘생긴 J이다. 또한 그 편의점에는 운명처럼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 있고, J가 마음에 두고 있는 물고기 닮은 까페 아르바이트생이 정해진 시간에 들른다. 그렇게 그들 모두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들은 편의점을 중심축으로 하여 돌아간다.
“나는 더이상 나의 성장에 저항할 힘이 없다. 나는 자라는 데 지쳤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여전히 횡행하고, 올해에는 스스로 대학에 다니기를 포기한다는 고대생의 대자보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리고 여기 이러한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을 읽는 동안 87년생 작가의 발랄한 문체에 흥겨워 물리쳐놨던 담배 한 개비를 더 빼들었다. 그리고 그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동안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그래서 아직 지친 기색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청춘은 흘러가도 바뀌는 것이 많지는 않다.
문진영 / 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창비 / 193쪽 / 2010 (2010)
ps. 그러고보니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거르지 않고 들르는 우리 집 근처 편의점도 꽤 흥미롭다. 말을 더듬지만 굉장히 순박해 보이는 사장이 운영하는 우리 동네 편의점은 일부러 그러한 것처럼 느리디 느린 종업원들만을 뽑는다. 그들은 아무리 줄이 길게 서 있어도 아주 꼼꼼하고 세세하게 그리고 그만큼 느리게 계산을 한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내가 가지고 온 물건이 모두 들어가기엔 좁아 보이는 봉투에 그 물건들을 집어 넣느라 고생을 한다. 때때로 결국 그 봉투에는 구매한 물건이 모두 들어가지 않아, 다시 카운트에 물건을 꺼냈다가 다시 새로운 봉투에 담는 수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그러한 순간에도 절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느긋하니 그또한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