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인류의 촘촘한 역사에 상상의 구멍을 낸 이들의 기이한 삶...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는 저자가 도서관의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면서 발굴해낸 (그 시작은 지도교수가 시킨 19세기의 잡지 목차를 복사하는 것에서 시작된) 열세 개의 이야기로 엮인 책이다. ‘아무 이득도 바라지 않고 자기 이상에 몸을 바친 사람들, 능력보다 꿈이 앞선 사람들, 실패했지만 기억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책 속의 인물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책의 겉면에 정리되어 있는 열세 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면서 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 그는 세익스피어의 알려지지 않은 희곡을 발견했다면서 자신이 몰래 희곡을 써서 세익스피어의 미발표작으로 만들었고, 그 작품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거짓 작품을 다시 표절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를 정도로 ‘똑똑한 바보’였다.
조지 살마나자르도 특이하다. 포모사(지금의 타이완)라는 지명은 알되 그곳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던 유럽인들 앞에서 포모사인 행세를 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게다가 그는 정통 유럽인이다. 그러니까 유럽인이면서도 동남아시아의 구석진 섬 나라 사람으로 위세를 떨면서 전 유럽인들을 한꺼번에 속였다. 심지어 포모사에 대한 백과사전적 책을 낼 정도였다니, 그에 비하면 보르헤스의 소설은 순진하기 그지없는셈이다.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 존 밴버드는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예술가이다. 미시시피강을 엄청난 길이의 그림으로 만들어 (그림 길이가 5km 였다니 믿어지는가?) 이를 돌려가면서 보여주고, (변사처럼) 설명을 곁들여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현재에는 그 엄청난 길이의 파노라마 그림의 한 쪽도 남아 있지 않단다.
‘지구 안은 텅 비었다’는 ‘지구공동체설’을 주장한 존 클리브스 심슨도 만만치 않다. 그는 비어 있는 지구 중심을 향한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몽상가였다. 그런가하면 X선이 막 발견되었던 시절에 ‘N선’ 이라는 것으로 유명한 과학 저널 ‘네이처’를 도배하도록 만들었던 프랑스의 과학자 르네 블롱들로도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그가 발견했다는 ‘N선'은 사실 눈의 착시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일곱 개 음을 이용하여 세계인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려고 했던 프랑수아 수드로도 있다. 그의 언어 체계가 통용되었다면 우리는 음악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이들에 비하면 미국인에게 우수한 포도 품종을 개발하여 보급하였지만, 그로 인한 달콤한 이득은 웰치에게 빼앗겨야 했던 이프레임 불은 그다지 흥미로운 편도 아니다.
어처구니 없기로는 아무도 몰래 뉴욕의 지하에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기압 지하철’이라는 것을 만들었던 앨프리드 엘리 비치가 최고일 수 있다. <잠언 철학>이라는 용어를 통용시키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 시인 마틴 파쿼 터퍼는 또 어떤가. 당대에는 아주 유효하였으나 예술성은 전혀 없었던 시의 말로가 어떤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여기에 엄청난 부를 상속받았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서 되지도 않는 연기로 조롱을 받았던 로버트 코츠, 파란빛을 만병통치약으로 믿었고 이 믿음을 일반 대중에게 이식시켰던 오거스터 J. 플리즌튼, 4류 배우였던 세익스피어는 그 희곡들의 원작자일 수 없으며 몇몇 작가들의 합작이었음을 주장하다 정신병원까지 들어가야 했던 장래 촉망했던 여류작가 딜리아 베이컨, 모든 항성에는 생물체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달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고 신문에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래 킨 사기꾼의 등장을 조장한 토마스 딕까지 모두 열세 명의 인물들이 책을 채우고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리고 자기 자신들조차 그것을 믿을 정도로 감쪽같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던 순수함을 간직한 인물들이 있어서 가능하였을 터이다. 물론 이렇게 묻혀진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파헤쳐 세상에 내놓기로 작정을 한 저자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폴 콜린스 / 홍한별 역 / 밴버드의 어리석음 (Banvard's Folly) / 양철북 / 399쪽 / 2009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