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청춘도 바로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되새김질 되어야 하느니...
“내 기본적인 자세는 매사에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어떠한 ‘주의’ ism 나 ‘도그마’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윤기가 스스로를 회색주의자로 지칭한 산문을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린 적이 있다. 그리고 여기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일본에서 강의를 하고 저술 활동을 하는 저자가 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오해할 일은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매사에 거리를 두는 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은 그는 끊임없이 사회를 향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오래전 읽었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 꺼내어서 읽는) 다섯 권의 책을 교재로 삼아 자신의 청춘 시절을 말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인 자신의 청춘에 대하여 조용조용하면서도 강건한 말투로 적어 내고 있다. 어떠한 ‘주의’에도 경도되지 않지만, 그것은 이 사회를 좀더 바르게 읽어내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의 발현이다.
그렇게 저자는 의지가 없어 아무 곳에도 스스로를 투척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마치 하나의 신념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과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는 어떤 ‘주의’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만큼, 스스로를 독려하고 자신의 시선을 날카롭게 만들기 위하여 애쓴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주의’이며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청춘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자신의 시간을 잘라나간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르게 보면 ‘성숙’이기도 하다. 한 발 한 발 죽음을 향해 간다는사실을 우리는 ‘성숙’이라는 형태로 천천히 받아들여가는 것이다...”
모두 다섯 권의 책을 토대로 한 산문집은 서평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성장을 토로하는 글이기도 하다. 야구부의 일원으로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던 그가 야구를 포기하면서 겪게 된 극심한 고민의 시절, 그리고 그 시절에 만난 책이 어떻게 현재의 그를 만들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무릎을 꺾고 고개를 숙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고개 숙여 들여다본 책을 통하여 또다른 꿈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고뇌의 원천이며 비극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증거’이기도 하다.”
열일곱 아이와 어른의 갈림길에서 마주하였던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비롯해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T·K生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라는 다섯 권의 책에는 그렇게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바꾸면서 스스로 찾아낸 정체성이 담겨져 있고, 부모님의 고향을 방문하고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에는 일본에서 구명 활동을 하던 시절들이 녹여져 있고,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전반을 두루 살피는데 필요한 시선을 갖도록 만든 근원적인 문제의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경쟁을 지렛대 삼아 도쿄를 향한 무서울 정도의 집중화가 진행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명분마저도 희미해져 지방이, ‘패트리’ (일종의 고향 사랑 마음이랄까)가 버림받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황금알을 낳는 도쿄’를 더욱더 살찌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국책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정신의 발품을 팔아 만들어진 그의 식견은 그것이 일본 그리고 도쿄를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갖도록 만들었다. 멈추지 않는 청춘의 힘으로 자신의 청춘을 읽어내는 강상중의 책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춰버린 듯한 우리들의 청춘을 지금이라도 되새김질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채근을 읽게 되는 것이다.
강상중 / 이목 역 / 청춘을 읽는다 :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姜尙中の靑春讀書ノ-ト) / 돌베개 / 261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