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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1. 2024

테오 R. 파익 《노크하는 악마》  

우리들 안의 악마성이 두드린다고 문을 열어 자신의 정체를 보일까마는...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 악은 형체가 없는 추상적 현상이며, 선의 반대급부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의 대명사로 이해된다. 악은 자연 신앙에서는 금기를 깨트리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나쁜 기질이나 성품으로 정의되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열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순화함으로써 악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래서 유일하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나로 하여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이처럼 작은 미움조차 내게는 악한 것으로 느껴지고, 나는 아직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몇 년 전 지하철에서 느낀 살의 때문에 아직도 고민스럽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교만, 탐욕, 식탐, 분노, 색욕, 질투, 태만을 인간의 7대 죄악으로 일컬으면서 각 죄목에 악마를 결부시켰다. 교만은 루시퍼 Lucifer, 탐욕은 마몬 Mammon, 탐식은 바알세불 Beelzebub, 색욕은 아스모데우스 Asmodeus, 질투는 레비아탄 Leviathan, 태만을 벨파고 Belphegor와 연관시켰다. 그리고 교만, 분노, 태만, 탐욕은 정신적인 죄악으로, 색욕과 식탐은 육체적 죄악으로 분류했다. 이뿐만 아니라 불신, 절망, 어리석음, 올바르지 못한 언동, 반항심, 호기심, 소심함은 비난받아 마땅한 나약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책은 악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악의 기원은 무엇이며, 악의 화신으로 꼽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이고, 그러한 악이 어떻게 표현되며, 그 악의 배경에는 무엇들이 있고, 또 우리는 악함에 어떻게 유혹받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종교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마녀사냥이나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표적 악의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악이라고 칭하는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현상들에 대해 기술한다.

  “미국 FBI는 범행 횟수, 시간, 범행 간격, 반복 여부에 따라 범죄자 유형을 대량살인범, 무차별살인범, 연쇄살인범으로 분류했다. FBI가 정의한 바로는, 한 장소에서 4명 이상을 살해한 사람은 대량살인범에 해당한다. 이들의 범죄 동기는 대부분 과거의 상처받은 경험으로 생긴 복수심이나 절망감이다. 무차별살인범은 대량살인범이 변형된 형태로 무아지경에 빠져 짧은 시간 안에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살해한다... 연쇄살인범은 대부분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가학적 성범죄자인 경우가 많다. FBI의 분류로는, 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을 죽인다. 또한 철저한 계획에 따라 범죄를 저지르며 주로 저녁에 활동한다. 이들은 성적 폭력성을 띠며 범죄 방법이 무척 잔인하다는 특징이 있다...”

  인류가 문명화된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악한 사례들을 읽다보면 조금은 절망스럽기도 하다. 사회의 진화와 함께 악에 대한 규정이나 악을 향한 응대의 룰은 세련되게 조직화되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악은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지능화되고 대규모화되고 있을 뿐이다. 천성처럼 가지고 있는 악한 마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정치적으로 고도화된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더욱 조장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공격 성향을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유인원 때부터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까지 15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도록 지능과 언어 이해 능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차 본능과 욕구를 조절하고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사회적으로 허락된 집단 살인(전쟁)이나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에 따른 살인 등 선천적인 살인 욕구를 없앨 제도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또한 무기가 발명됨으로써 살생에 대한 망설임이 줄어들었는데,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제는 사람을 간단히 해칠 수 있는 무기들이 속속 발명되면서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 개개인 또한 알게 모르게 악의 위험 혹은 악의 모험에 쉽게 노출됨으로써 악에 대한 무감각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작가의 관점이 무척 보수적인 것이 아쉽지만 (세계 열강들의 관점을 그대로 따라 이슬람 테러 세력이나 공산 독재에 대하여 별다른 전제조건 없이 악으로 치부해버린다) 악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악에 대한 서머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일 수 있겠다.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인간은 태초부터 대담한 시도와 호기심, 흥분, 모험심을 즐겼으며 이런 것들이 인류의 역사를 만들었다. 현대인들은 안정된 일상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흥분, 극적인 긴장감을 얻으려고 일부러 위험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기도 한다.”

 

 

테오 R. 파익 / 박미화 역 / 노크하는 악마 (Das Bőse in uns) / 수북 (Subook) / 307쪽/ 20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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