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을 읽는 어려움을 통해 세상을 읽는 어려움을 통과하다...
흔하게 들어 접하는 책일수록 읽지 않은 책일 확률이 높다. 사마천의 <사기> 또한 그렇다. 삼황오제 시절의 황제에서부터 한 무제에 이르는 삼천여년의 기록인 <사기>를 제대로 읽은 것 같지가 않다. (하긴 일연의 <삼국유사>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제대로 읽지를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원전 텍스트들에 대한 해설서들을 조금씩 읽다보니 그 원전의 텍스트 자체를 읽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희미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원전이 아닌 그 해설서에 손이 간다. 그것참...
이번에 읽은 책 또한 북경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중화문명대강당’의 강연을 정리한 것으로, 강연자는 중국에서는 유명한 <사기> 연구 분야의 전문가라고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기> 전체가 아니라 그 중 진시황제에서 한 무제의 시기 정도를 갈무리하면서, 그 시기에 주도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인물들을 열한 명 (진 시황제, 이사, 항우, 유방, 여후, 한신, 장량, 주아부, 황후 두씨 및 왕씨, 한 무제) 추리고, 여기에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을 추가하여 열두 명을 중심으로 <사기>를 분석하고 있다.
“... 홍문연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투쟁은 대개 무척 은밀해 외부인이 그 내막을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막이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그렇게 드러난 사건의 편린을 극히 총명한 작가들이 퍼즐을 맞추듯, 사건의 전모를 상상해 책으로 쓰거나 무대로 올려 공연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이들이 어떻게 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시황제의 최초의 중국 통일), 그러한 통일 이후 어떠한 잘못으로 통일 중국이 다시금 혼란에 휩싸이게 되며, 또다시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항우와 유방의 격렬한 전쟁 끝에 다시금 한 나라로의 통합)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가를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사마천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였으며, 그러한 역사 서술 방식이 어떻게 현재의 우리에게까지도 귀감이 되는지를 알리기 위하여 애쓴다.
“... 사마천은 위대한 역사가입니다. 비록 항우를 무척 동정하고 좋아했지만, 항우가 유방에 미치지 못한 점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항우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백히 지적했습니다. 사마천은 유방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유방의 원대한 포부와 지략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사마천을 통해 항우가 결코 유방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사마천은 세상을 읽어내는 일은 무릇 사람을 읽어내는 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저자의 분석에 따르자면) ‘시대를 앞서간 인물’, ‘역사 발전에 중요한 작용을 했던 인물’, ‘군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인물’, ‘도의나 원칙을 견지하다 희생된 인물’, ‘자신의 학설을 전파하거나 자신의 이상을 견지하고자 평생을 고생 속에 분투한 인물’, ‘성공한 듯하나 결국 실패한 인물’들을 통하여 광활하기만 한 중국의 고대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마천의 (또는 사마천이 기술한) 역사는 한 무제 이후의 중국, 그리고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마천의 인물들을 통하여 중국의 고대사는 살아 숨쉬기 시작하고, 그러한 숨결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동감이 넘친다. 황제나 영웅에게 한정짓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았던 구석구석의 인물에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려고 노력했던 민주적인 (?) 역사가의 시선은 그렇게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 사마천은 영웅호걸만 기록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 사업가, 점쟁이는 물론이고 조폭, 호모까지도 기록했습니다. 남성만 기록했을까요? 천만에요, 여성도 많습니다. 성공한 인물만 기록했을까요? 실패한 인물도 기록했습니다. 실패한 인물까지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에 사마천의 정신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한자오치 / 이인호 역 / 사기교양강의 / 돌베개 / 334쪽 /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