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전위로 무장한 자연주의 현대도시 공략가...
인생의 대부분을 아파트 혹은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이라고 불리우는 집단 거주지역에서 살았다.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거쳤고, 덩치만 커졌을 뿐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의 대학교를 다녔다. 다니는 회사도 매냥 그 모양이어서 강남 주변의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가 있는 사무실의 지극히 간략화된 인테리어 속에서 쭈욱 일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포천군 송우리의 개량 한옥, 혹은 할머님이 계시던 전라북도 부안군의 초가집을 떠올려야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마당에 한가득 짚이 쌓여 있고 싸리나무로 만들어진 옆집 담을 통해 그집 마당까지 건너다 볼 수 있었던 할머니의 집이나 ㄷ자 모양의 한옥 중간에 손으로 펌프질을 해야 하는 수돗가가 있고 양조장과 맞닿아 있는 담을 따라 (어린 내가 보기엔)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에 변소가 위치해 있던 송우리의 우리집(이라고 해봐야 전세였지만)은 그나마 그리움의 대상이다.
“문제는 이 장소에서 생활하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거란 무엇인가 하는 사상의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제한된 대지이기 때문에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가진 자연의 변화를 최대한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시하고 무난한 편리함을 희생시켰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다. 정식으로 건축학과를 나와 그쪽 계통의 지분을 자연스레 취득한 건축가가 아니면서도, 독특한 실험정신과 함께 끈기를 갖고 자신의 꿈을 유지보수발전시키고 있는 보기 드문 건축가로 보여진다. 콘크리트라는 삭막한 재료를 주로 이용하면서도 자연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렇게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을 위하여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박물관을 짓고 어린이들의 이용시설을 짓는다.
“... 살아 있는 자연은 변화라는 풍요로움을 주는 반면, 수고가 많이 들고 번거로운 것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는 그런 자연을 상대로 기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불안 요소를 배제하려고 하는 합리주의 논리에 따라 건설되고 있다. 자연과 도시의 이러한 골을 건축으로 메웠을 때 시야에 떠오르는 것이 사회 비평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주제이다... 현대 사회가 외면하고 밀쳐 낸 것들을 보듬어 내고 그 문제를 부각시키는 건축, 그 장소 그 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건축.”
아직도 현역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건축가이며, 곧바로 타협하는 편한 길을 버리는 대신 자신의 이상을 위하여 ‘게릴라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진두에서 지휘하는 일에 매진한다. 게다가 그는 풍요로운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이 활동하는 그 공간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이런 사람들이 흔치 않으니 말이다) 사고의 인간이기도 하다.
“나의 활동 거점은 오사카 우메다 근처 대지 30평 위에 지은 작은 아틀리에다. 원래는 나의 처녀작인 소형주택 ‘도미시마 주택’(1973)이었다... 우리는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에 따르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다.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이다. 소국의 자립과 인간의 자유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어디까지나 개인을 주체로 기성 사회와 투쟁하는 삶을 선택한 체 게바라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 도시의 풍요는 그곳에 흐르던 인간 역사의 풍요이며 그 시간이 아로새겨진 공간의 풍요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그런 장소가 상품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사고의 흐름들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아파트에 가로막히고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높아만져야 돈이 생긴다), 잘 흐르고 있는 강들에는 보가 설치되고 (심지어 그 강에 로봇 물고기가 노닐 수도 있다), 서울의 한 복판에 스키 활강장이 들어서고 (옛 고궁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 이제는 축구장 반만한 크기의 인공섬이 (그나마 도시에사는 우리들의 허파 구실을 해주던) 한강에 유유히 떠다니게 생긴 서울에서 사는 일은 갈수록 각팍해져만 간다. 그러니 이런 인생관의 건축가를 읽는 일로라도 숨을 쉬었으면 좋겠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정보화가 발달하고 고도로 관리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볕이 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늘. 이것이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안도 다다오 / 김광현 감수 / 이규현 역 /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建築家 安藤忠雄) / 안그라픽스 / 420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