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향하는 소설가의 시선은 어찌보면 천하태평인 듯도 하구나...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홀로 나와 있다보면 별의별 상념이 다 떠오르곤 한다. 내가 이미 흘러보낸 시간에 빚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대해서는 채권자의 노릇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도 그런 상념들 중의 하나다. 그 상념들을 한번 솎아내볼까, 하고 잠시 들어올린 책이 또 하필이면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뭐 운명의 영역일 것이다.
“...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지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의 꿈 아닌 꿈들 중의 하나는 바로 일 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무직자를 희망하였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노동하지 않기를 꿈 꾼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노동이 지폐로 환원되는 대신 곧바로 현물로 바뀌기를 희망하였고, 그것이 최소한의 것이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저자의 위와 같은 언급이 아니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지폐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나의 큰 자유를 일에 저당잡힘으로써, 작은 자유들을 향유 할 (거주 이전이나 여행의 자유와 같은...)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피고용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힘차게 또 빈틈없이 완수하게 유도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도구는 채찍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이 단지 겁에 질리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닐 상당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껴야만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등장하면서 고용의 규칙을 새로 써야 했다...”
이처럼 희망과 자유와 관련한 우여곡적을 겪은 끝에 나는 사실 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는 위치에 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해서 사정이 조금 나아졌느냐 하면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일의 다양성이나 그에 속한 직급이나 직위의 다양함과는 별개로 모든 일은 공평하게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해당하는 사람들을 얽어 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저자의 산문들 속에 등장하는 1인 기업의 사장이나 거대 기업의 총수나 형식에는 상관없이 내용적으로는 일에 속박되어 있을 뿐이다.
“...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템스 리비에라 호텔의 어느 회의실에 모인 저소득층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공감, 애정, 그리고 로렌스가 경구처러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대로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을 토로했다. ‘모먼트’ 비스킷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한 그럴 듯한 해결책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문에서는 이처럼 직장인들을 상담해주는 상담사와 글로벌한 회계 기업의 CEO를 비롯해서 화물선의 오고가는 강을 관찰하거나, 거대한 슈퍼마켓의 물류 창고에 머물고, 비스킷 공장에서 하나의 비스킷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듣는다. 또한 스스로를 떡갈나무에 옭아맨채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함께 하고, 송전탑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는가 하면, 거대한 박람회를 통하여 창업하려는 자들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고 항공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도 한다.
“현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성취한 것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허리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 혹은 직업, 혹은 직장인에 대하여 중구난방으로 시선을 들이미는 것도 흔치는 않은 일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작가라는 직업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의 일이나 직업으로서 소설가, 라는 자신의 직업을 냉정하게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독자인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써 그런 작업을 수행한 것인지도...) 여하튼 어느 일요일 오후 소강 상태에 빠진 나의 ‘일’에 대한 상념을 달래보려고 집어든 책으로는 아무래도 부적절하다. 나는 상념으로부터 한 걸음 내디뎌 시름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역 / 일의 기쁨과 슬픔 (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 이레 / 374쪽 / 2009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