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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4. 2024

요네하라 마리 《대단한 책》

책을 대단하게 만드는 대단한 사람의 독서기...

  하루에 세 시간 정도, 그러니까 이틀 동안 여섯 시간 정도만을 잤다. 그 사이 다섯 시간 정도 운전을 했고 여덟 시간은 회사에서 일도 했다. 그런가하면 접영과 배영과 평형과 자유형을 차례로 (일명 IM : Indivisual Medly) 400미터 두 번, 200미터 한 번, 100미터 한 번, 그러니까 약 1000미터 정도 수영도 했고, 그리고 최근 가장 정이 가는 일본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저자가 러시아어 통역을 하면서 직접 겪은 하루 세 시간 정도만 자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인물이 세 명 있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의 보리스 옐친’,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인 안드레이 사하로프’이다. 러시아어 통역자인 저자가 직접 그들을 수행하면서 겪은 것이니 아무래도 사실이겠지...)


  “먹는 속도, 걷는 속도, 책을 읽는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먹기와 걷기의 경우, 자주 빈축을 사기도 한다... 그런 반면 독서의 경우에는 아무리 빨리 읽어도 옆에서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 입시 때의 암기 지옥에서 해방되었을 때부터 책을 읽는 속도는 재미가 붙을 정도로 빨라져, 그 후 20년 동안 하루 평균 일곱 권을 읽고 있다.”


  그야말로 ‘대단한 책’ 이라는 제목 대신 ‘대단한 요네하라 마리씨’ 라는 제목을 채택해도 괜찮을 법한 독서량을 가진 저자가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작가의 글을 읽고 (참고로 책에는 390권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쓴 독서일기와 서평으로 이루어진 책은, 그러나 이상하게 푸근하다. 러시아 대신 체첸을 두둔하고,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을 향해 비아냥을 날리는 작가는 (그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꽤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키웠다) 약한 것들에 대한 배려를 타고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제아무리 딱딱한 이론서라고 하더라도 요네하라 마리씨의 손을 거치면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서평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선호하는만큼 그녀 자신도 딱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나 할까.


  현학적인 취미가 전혀 없어 보이는 작가는 손에 닥치는대로 읽어대는 것 같지만 나름 취향이 없지는 않다. 러시아 통역 작가 답게 러시아의 문학 작품에 일견을 이루고 있고, 또한 통역이라는 것이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본의 근현대 문학에 대해서도 나름 섭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잦은 정치인들의 수행과 통역 탓이지 러시아의 숨겨진 정치사를 비롯한 논픽션류 또한 즐겨 읽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루에 일곱 권의 책을 읽어대는 작가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암의 발병과 수술 그리고 전이라는 상황을 앞두고는 암과 관련한 책들을 무수하게 읽는다. 평생 책을 읽어온 사람답게 자신에게 찾아온 병을 앞에 두고도 버릇처럼 책을 들고 그 병을 치유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여전하지만 의미심장한 심상으로 책을 들여다보았을 작가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스탈린의 숨겨진 진실에서 진드기학 입문서까지, 영어제국주의론에서 임포에 관련된 독일 소설까지 섭렵하는 이 다독의 여왕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작가에게 경외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다독보다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나 따뜻하기 그지 없는 시선이다. 책을 향하고 있는 그 따뜻한 시선이 일상으로까지 이어졌던 한 통역가이자 작가의 이른 죽음이 다시 한번 애처롭고 애석하다.

 


요네하라 마리 / 이언숙 역 / 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打ちのめされるようなすごい本) / 마음산책 / 680쪽 / 20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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