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절대로 헐겁게 이어지지 않는 법...
러시아어 동시 통역사였으며, 결혼은 하지 않았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와 개를 키웠고 2006년 난소암으로 죽었다. 그리고 작가는 하루에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 일곱 권이라... 하지만 그녀가 매일 먹어치우듯 읽은 책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글은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반려 동물처럼 편안하다.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평화로와진다. 문득문득 날카로운 인문학적 예민함이 드러날 때 조차도 그의 글은 평화를 지향한다.
“... 영국에서 지낸 2주일, 미국에서 지낸 2주일 동안 그 밍밍한 맛과 거친 양념, 가축 사료 같은 양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이런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세계 각지 어디로 파견되든 먹는 것에 불만을 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일시적으로 어느 지역을 군사적인 무력으로 제패했다손 치더라도, 그곳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계속 지배하려면 군대가 주둔해야 할 뿐 아니라, 본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현지 감독으로 파견해야 한다. 파견된 사람들은 기꺼이 그곳에 거주해야 하고. 그러려면 본국 음식이 매력 없을수록 유리하지 않을까. 본국 요리가 맛있다면 외지에서의 장기 체류를 견뎌낼 수 있을까? 반대로 체류하는 나라의 음식이 더 맛있다면 고향 생각도 덜 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몇 년이라도 기꺼이 체류할 수 있을 것이다. 맛없는 요리, 이것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 영국이나 미국 요리가 맛있어진다면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질지 모르겠다.”
책은 어린 시절 작가가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머물렀던 체코의 프라하, 그리고 동시통역사를 하면서 이백 번이 넘게 방문했다는 러시아에서의 음식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여기에 무수하게 읽은 책들에서 끌어낸 음식과 관련한 여러 지식들 또한 톡톡하게 양념 노릇을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작가의 친가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미식가의 피가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 식도락으로 몸이 상하셨는지 삼촌은 만년에 당뇨병으로 고생하셨다... 숙모의 전화를 받고는 그날로 삼촌을 찾아 뵈러 오사카로 달려갔다. 이미 의식이 몽롱하신지 내가 병실에 들어가도 모르셨다. 두세 시간 동안 숙모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삼촌이 가늘게 눈을 뜨셨다.
“마리가 왔니?”
“비행기로 돌아갈 거니?”
“아니오, 신칸센으로요.”
“그러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삼촌은 눈을 감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역 도시락은 팔각도시락으로 해라…….”
내게는 이 말이 그 일주일 뒤 세상을 뜨신 삼촌이 남긴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
먹는다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절대로 헐겁게 이어질 수 없는 법이다. 이미 어린 시절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작가는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는 동안에 누린 기억들을 잘도 음식과 연관시킨다. 서곡에서 시작하여 간조곡을 포함 3악장이라는 음악의 양식을 띠고 있는 산문집은 그렇게 작가의 기억의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음식의 소란스러움을 끄집어 내고 있다.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 이는 어찌 이리도 잔혹하고 죄 많은 일인가. 살생의 죄책감과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이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실려 있는 대부분의 음식이 먹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임에도 이렇게 맛이 느껴지는 것은 역시 작가의 요란하지 않은 식성 아니 느끼하지 않은 문체 탓이라고 해야겠다.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주목하도록 만드는 미식견문록이라고 해야 하나. 작가의 책을 좀 더 읽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도록 채근하는 이 흔치 않은 경험이라니...
요네하라 마리 / 이현진 역 / 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旅行者の朝食) / 마음산책 / 260쪽 / 2009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