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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9. 2024

루이스 버즈 《노란 불빛의 서점》

책과 서점을 사랑한 남자의 인생이 심심하다는 선입견을 심어줄라...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거나 문학적인 성취가 높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글을 쓴 이의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사랑한 나머지 서점에 취직을 하고 이후 더욱 책을 사랑하게 되고, 서점을 그만 둔 뒤에는 출판사의 외판원이 되고 다시 또 책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은퇴 이후에도 ‘일주일에 적어도 다서 번은 서점에 간다’는 어쩔 수 없는 책 매니아 혹은 서점 매니아의 이야기이다.


  “나는 멋지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일거리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았다... 서점으로 나를 이끈 게 무엇이었는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딱히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느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내게 육박해오던 그 힘이 덜해지는 건 물론 아니다... 책은 아이디어와 상상에 살을 덧입혀 풍성하게 한다. 또한 서점은 우리의 살진 자아이고 터 잡고 사는 도시이고.”


  그러고보니 내가 학교 앞 문방구가 아닌 서점을 정기적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d마도 중학교 이후였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은 재건축된 잠실 주공 아파트 1단지 상가내에 있던 (이제는 이름도 잊었다) 서점에 들르기를 즐겼는데,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나와 친해져서,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도서 대여점을 대신해서) 서점의 주인은 모르게 책을 빌려 읽고는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빌려준 책을 돌려주러 갔다가 그 누나의 여동생과 친해지게도 되었고, 아마도 생애 최초의 이성과의 데이트를 그 친구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너머 흘렀지만, 이년전까지도 미혼이었던 그 친구와는 지금도 일이년에 한번 정도 전화 통화를 하고 삼사년에 한 번 정도 만난다. 마지막으로 만난게 이년전쯤이니 올해는 한 번 만나게 되지 않을까.


  “독서는 혼자서 하는 외로운 행위이지만 세계와 손잡기를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비록 탐서가들이 모두 책 판매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레타와 리즈, 나와 그 밖의 많은 사람은 우리를 감동시킨 책들 때문에 결국 서점으로 이끌린 것이다...”


  대학에 간 이후에는 학교 앞에 있던 ‘이어도’라는 사회과학 서점의 단골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함께 운동을 하던 선배나 후배를 볼 수 있었고, 서점 주인이었던 누나에게서 술깨는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실 수도 있었다. 장정일이나 황지우의 시집을 사기 시작한 것도,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작물들을 처음 산 것도 그곳에서였고, 박상륭의 책에 감화되어 칠조어른 네 권을 몽땅 산 것도 바로 그곳에서였다.


  이어도에 이어서 내가 들락거린 곳은 동대문에서 종로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있는 도서 도매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당시로서는 크다고도 할 수 있는 돈을 만지면서부터는 쩨쩨하게 한 두권씩 책을 구매하는 버릇을 버렸다. 나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에서 책을 신중하게 골라 그 리스트를 적은 다음에, 동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25%에서 3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대량 구매하고는 했다. 


  “한 권의 책, 거기서 읽은 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의 온갖 좋은 것, 사소한 것, 심오한 것들이 시작되었음을 나는 배웠다. 그 한 문장이 나를 다른 책으로 이끌고 다시 그 책이 훨씬 더 많은 다른 책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책장수의 마음은 이런 작은 정보의 조각들, 즉 피보나치 수열, 철새들의 이동 패턴, 아비시니아의 민간설화, 16․17세기에 이탈리아 명장名匠들이 썼던 바이올린 니스 등으로 채워져 있기 십상이지만 그건 아주 즐겁고 유쾌한 중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버릇은 지금까지도 변형된 채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동대문의 도매상이 아직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곳에 나가지는 않는다. 대신 코엑스의 중앙에 위치한 반디 앤 루니스라는 대형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때로는 그 서점과 연결된 캐주얼 매장에서 옷을 사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잔뜩 적어 놓은 리스트를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서 다시 찾아가며 신청을 한다.  


  “책은 영화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있고, 더 사용자 친화적이다... 영화는 이미지를 제공해준다. 책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동력으로 삼아 그의 내부에 이미지들을 만든다. 책은 두뇌에 좋다. 신경학자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때는 사람의 두 눈이 멍하니 앞을 향하고 있지만, 책을 읽을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움직여 신체 움직임이 마음을 지배하는 뇌를 자극하고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책에 대한 예찬 그리고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찬에서 시작되어 출판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는 책이지만 조금은 어중간하다는 느낌이다.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사적인 이야기들과 책과 출판의 역사라는 공적인 이야기가 조금 따로 논다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서점이나 책과 연관된 에피소드들을 나 또한 이리 쉽게 찾아냈는데, 이에 비한다면 평생을 책과 연관된 그리고 서점과 연관된 곳에서 일한 지은이의 글들이라고 보기엔 조금 에피소드들이 약하다. 오호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힘이 빠진다고나 할까. 지은이는 실컷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를 책으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이거 너무 싱거운 인생이잖아, 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그나마 관련된 기억조차 끄집어 낼 수 없는 사람이면 더더욱...

 

 

루이스 버즈비 / 정신아 역 / 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The Yellow - Lighted Bookshop) / 문학동네 / 295쪽 / 20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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