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세상을 향하여 아름다움 뿜어내는, 작가의 견고하지만 소박한 시선.
“...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글쓰기를 꿈꾸었던 사람치고 김훈의 문장을 읽으며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 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절망 또한 하게 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문장은 시간을 먹고 자라면서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견고함 속에 또 그마만한 아름다움이 있으니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점점 강해지는데, 또 그만큼 아름다워지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될수록 인간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다들 제각기 아파트와 오피스텔과 자동차와 밀실 안에 들어앉아 있다. 그 수많은 세포들의 틈새에 재난은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밀실에 고립된 인간들은 재난을 돌파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 소방대원들은 그 밀실을 깨고 들어가 인간을 구한다...”
이번 산문집은 그간 그가 겪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이 느낀 것들을 피력한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소방관(아마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 등장할법한)이 있고, 박경리 선생이나 황순원 선생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 바로 곁에 작가 김훈이 있다.
“... 희망이란 없었다.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포기한 사람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마도 포기한 사람 쪽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스물일곱의 청춘이었다... 기자들은 스스로의 소망이나 지향성을 외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폐기처분해버린 소망과 지향성이 타인에 의하여 불붙여지기만을 기다리면서, 그 기약 없는 겨울을 통과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쓰고 있는 글에 대하여 토로하는 몇몇 장면들이 눈에 띈다. 작가의 글이 점차 견고해지면서도 왜 점점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챌 수 있는 단초도 제공된다. 그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세상의 야만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세상의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견고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견고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만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겠죠. 그 이외의 사명은 나한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것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더러운 세상의 악과 폭력과 야만성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세상의 온갖 야만성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줍잖은 글들이 그리고 말들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을 향하는 작가의 강단 있는 외침이 존경스럽다. 부러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집약된 단어의 선택이 존경스럽다. 파쇄되지 않아도 좋을 딱 그만큼의 문장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태도가 존경스럽고 또한 부럽다. 할 말이 많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들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우리들이 부끄러운 것은 물론이다.
김훈 / 바다의 기별 / 생각의 나무 / 211쪽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