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옹호하기에 바쁜 악한들의 한없이 추레하기만 한 현재...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너무 착해서 싱겁다는 느낌을 받는 소설을 읽은 기억은 있지만, 이번 소설처럼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다들 착하지 않은 경우는 또 오랜만이다. 순자의 성악설이라도 신봉하는 것인지 작가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옆에서 약간만 도와주어도 악한이 되어 버리는 형국이다. 후천적으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악에 물들어버리게 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노부유키는 성가셨다. 모든 게 다 성가셨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거칠어지면 정기선을 댈 수 없어 급식 양까지 줄어버리는 섬. 오락이라고 해봐야 텔레비전과 등대지기 할아버지가 파는 포르노 잡지와 섹스뿐이고, 희미하게 피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지겨울 정도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섬.”
사건의 미하마 섬이다. 대부분 두 개의 성만으로 이루어진 집성촌에 가까운 섬에 살고 있는 중학생 노부유키는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는 성가신 다스쿠와 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동급생 미카와 함께 어느 저녁 섬의 정상에 위치한 산사에 들르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쓰나미가 미하마 섬을 덮치고 노부유키를 포함한 세 명의 소년과 소녀, 매질하는 다스쿠의 아버지 요이치와 등대지기 할아버지만이 생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존의 순간에 노보유키는 미카를 위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이 광경을 몰래 다스쿠가 지켜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섬을 나온 노부유키는 아내 나미코와 딸 쓰바키와 함께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가족을 구성한 채 살아간다.
“수건과 속옷을 조그맣게 개다 보면 늘 뇌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펼쳐서 쓸 거라 생각하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개어서 서랍장 속에만 넣어두고 꺼내지 않는다면 또 몰라도.”
하지만 겉으로만 평온해 보일 뿐인 가족이다. 아내 나미코는 아이가 유아 교육을 받는 동안 남자의 방에 스며들고, 그사이 이들의 어린 딸 쓰바키는 성추행을 당하고, 노부유키는 다스쿠의 협박을 해결해 달라는 미카(이제는 새로운 이름의 연예인이 되어 있는)의 부탁을 받고 조용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어린시절부터 노부유키를 졸졸 따라다니던 다스쿠는 이제 다시 노부유키와 대면하게 되고, 섬에서 벌어진 아무도 모르는 살인 사건은 십수년이 흘러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죄의 유무나 언동의 선악에 관계없이 폭력은 반드시 들이닥친다. 그것에 대항할 수단은 폭력밖에 없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은 적이 있는 노부유키는 잘 알고 있었다. 폭력으로 상처 입은 자는 폭력으로밖에 회복할 수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땅은 없다. 폭력에 상처 입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의 건너뜀이 일어나고, 시점 또한 노부유키에서 다스쿠로 옮겨 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감정의 이입 필요로 하지 않는 뻔하게 극단적인 로맨스, 그리고 자연스럽지 못한 인과 관계로 구성된 인간 관계들은 어딘지 서먹해 보이고,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스스로를 옹호하는 등장 인물들도 짜증날 (이것이 작가의 의도라면 제대로 먹혔다고 해야 하나) 따름이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서 어리둥절하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어린 소년 소녀가 악다구니 같은 세상에 별다른 방어 기제 없이 버려졌을 때, 그들의 성장 이후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마호로라는 동네의 따뜻함과 이번 소설에서 보여지는 미하마라는 섬의 섬뜩한 비열함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당황스럽다.
미우라 시온 / 이영미 역 / 검은 빛 (光) / 은행나무 / 363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