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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8. 2024

브누아 뒤퇴르트르 《소녀와 담배》

담배 한 개비를 둘러싸고 흐르는 두 개의 프랑스판 인간 극장...

  담배를 둘러싼 두 개의 인간 극장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만에 읽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으로 좌충우돌 하는 듯한 스토리가 묘미이다. 금연 구역이 확장되고 흡연가들의 설 땅이 점차 좁아들고 있는 프랑스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마 프랑스는 더하지 않을까. 어느 때인가 멋진 파리지엥의 야외 카페 흡연도 사라질 것이라던가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 듯...) 배경으로,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 그리고 공무원인 ‘나’에게 벌어진 일련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먼저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의 이야기는 이렇다. 경찰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힌 데자레는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형수는 마지막 순간 직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법 규정이 있다. 그리고 이 법을 근거로 데자레는 담배를 피고 싶다는 요구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교도소에서는 절대적으로 금연이라는 또다른 법 조항이 있다는 것... 이러한 법 조항 사이의 충돌 때문에 결국 데자레의 사형은 연기된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인 ‘나’는 시청에서 근무하면서도 시청의 여러 정책을 반대하는 편에 속한다. 특히 아이들을 싫어하는 ‘나’에게 시청을 개방하여 아이들을 시청에서 자유롭게 뛰놀도록 만드는 시의 정책이 못마땅하다. 함께 살고 있는 라티파가 아이를 원해도 거부하는 판인데, 그러한 아이를 출근한 이후 복도에서든 식당에서든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못마땅하다.


  다시 데자레로 돌아가서... 결국 데자레의 요청은 상급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고 교도소 바깥의 일정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다. 담배 회사는 이를 이용하여 급증하는 금연 요구에 대항한 일련의 쇼케이스로 이 사건을 만들려고 하고, 데자레의 마지막 끽연 장면은 생방송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데자레가 연출한 쇼는 그를 사형으로부터 구하고 유명인사로 만들어 버린다.


  “... 믿어지지 않는 이 법적 반전이 사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와 관련되긴 했지만, 세상 그 어떤 광고도 만들어낼 수 없었던 담배와 인생의 결합은 각종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이슈로 바뀌었다...”


  데자레가 이렇게 사형수에서 유명 인사로 탈바꿈 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시청에 근무하던 ‘나’는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한 소녀에게 발각되고 결국 아동범죄자라는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자신은 담배 한 개피를 몰래 피운 잘못 밖에 없는데도 ‘나’는 소아성애자의 취급을 받게 되고 심지어 아동으로 이루어진 법정에서 아이에게 훈계를 받는 지경에 이른다.


  “... 왜 당신은 데지레 요한슨의 너그러운 태도에서 영감을 받지 않나요? 모두가 그 사람을 범죄자라고 생각했지만 데지레는 ‘인생 만세’란 말을 할 줄 알았잖아요?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자유를 얻을 만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유를 가질 만한 자격을 얻고자 무엇을 한 겁니까?”

 

  이와는 별개로 소설에는 ‘존 웨인의 양심’이라는 이름의 테러리스트 그룹이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인질이 된 여섯 명이 나오게 되며, 이들을 가지고 ‘순교자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경연 대회를 치르는 비극과 희극이 교묘하게 섞인 또 하나의 쇼가 연출된다. 이들은 전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이 연출한 쇼를 중계하고, 이들 인질의 목숨을 이들 네티즌들에게 맡긴다.


  “육 개월 동안, 우리 카메라의 삼엄한 경계 아래 인질 여섯 명이 경연대회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며, 이 대회에서 인질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시험을 끝마쳐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 중계될 것이며 전세계 시청자들이 그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참가자들에게 투표를 할 수 있다. 만약 무례한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매월 말 가장 적은 수의 득표를 얻은 인질이 처형될 것이다.”


  사형수 데자레와 공무원인 ‘나’, 그리고 데자레를 돕는 변호사 마렌과 ‘나’를 돕는 아내 라티파를 비롯해서 글로벌한 담배 회사인 제너럴 타바코사와 테러리스트 그룹 존웨인의 양심 등 블랙 코미디 가득한 소설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법 사이의 해학적인 충돌, 수혜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생산하는 대중매체의 좌충우돌 양상 등 현대 사회의 장치들에 대하여 은근한 비판을 가한다.


  그런데 오리무중인 번역이 이러한 소설의 장점들을 한없이 누그러뜨린다. 프랑스어를 전공하지 않았으니 프랑스어 특유의 어떤 막연함을 알 수는 없으나 아마 이 정도는 아닐터... (번역된 다른 프랑스어 작품도 있지 않은가, 설령 이 작가의 어떤 특징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 사회 비판적인 현대 소설의 중요한 맥을 잘 잡고 있는 소설에 스크래치를 잔뜩 넣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쉽다.

 

 

브누아 뒤퇴르트르 / 한지선 역 / 소녀와 담배 (La petite fille et la cigarette) / 강 / 235쪽 / 20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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