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꿈을 닮은 사건도 유가와 교수의 과학적인 해몽 앞에서는 무용지물
띠지에 실린 ‘<용의자 X의 헌신> 시리즈 제2탄’ 이라는 (사실 <용의자 X의 헌신> 시리즈의 제1탄은 <탐정 갈릴레오> 라는 연작 소설집이다) 광고 문구가 아니어도 책을 읽으면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여준 묘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소설집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사건을 수사한 구사나기 형사, 그리고 구사나기를 돕는 동창으로 등장한 유가와 교수가 한 팀을 이루어서 그때 그 포맷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꿈에서 본 소녀」.
그저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한 소녀를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그 소녀에 대한 막연한 사랑을 간직한 채 성장했고 청년은 드디어 자신이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그 소녀로부터의 초대장을 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날 그는 그 소녀의 침실에서 총격을 받게 되고, 도망쳐 나오는 중에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흔하지 않은 이름의 소녀를 사랑한 소년, 하지만 아무도 그런 이름의 소녀를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소녀는 실제로 나타났다.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고 하여도 기억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 다니며 스스로 생존한다.
「영을 보다」.
충동 살인인가 계획 살인인가... 자신을 살해한 범인의 집에 영이 되어 나타난 여자, 그리고 그 시간은 바로 여자가 살해되었던 바로 그 시간이라면... 우연찮은 일로 벌어진 충동 살인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 순간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하지만 약간의 오차가 생기고 만) 계획 살인으로 밝혀지는데...
「떠드는 영혼」.
착하게 살면서 한 노인을 방문하던 남자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남편의 실종을 구사나기 형사에게 부탁하는 아내... 그리고 그 남자가 방문하던 아주머니의 죽음과 그 집에 들어가 있는 이상한 두 부부... 여기에 매일 밤 같은 시각 집안을 들썩이도록 만드는 시끄러운 영혼의 출현...
「그녀의 알리바이」.
타살로 위장하고 있지만 자살일 확률이 있는 한 남자의 죽음... 그리고 그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애매하기만 한 그 아내의 알리바이... 석연찮은 죽음과 석연찮은 알리바이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도 움켜쥐는 유가와 교수, 그러나 유가와 교수는 이 석연찮음을 풀어줄 해법을 실컷 만든 뒤에 이 석연찮음이 석연찮음으로 남기를 바란다.
「예지몽」.
한 남자를 위협하는 한 여자, 그리고 실제로 자살을 밀어붙이는 여자... 그런데 이 여자는 정말로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여자의 죽음을 미리 보았다고 말하는 한 소녀의 등장... 정말 이 사건은 그 소녀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소녀의 예지몽에는 또다른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나름대로 역할을 하던 구사나기 형사는 이제 사건을 물어다주는 메신저 혹은 사건 해결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한 캐릭터로 전락한 반면, 유가와 교수는 여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과학적 진실 (혹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는 실마리들)을 밝혀낸다. 이미 일본에서 TV 시리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재미를 보장하는 킬링 타임용 미스터리 추리 형사물이라고나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 / 양억관 역 / 예지몽 (豫知夢) / 재인 / 292쪽 / 2009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