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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8. 2024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아스라한 수근거림으로 가득한 애매모호의 세계...

  책을 읽고 있는내내 알 수 없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종잡을 수 없으니 더욱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수군거림이다. 그 근원이 책에 있는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읽어내고 있는 것이 책인지 나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요즘은 이렇게 책을 읽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를 상실에의 아픔으로 끌어당기는 블랙홀과도 같은 그 암흑의 물질과도 같은 것,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든 모든 사랑은 동일하게 그러한 알 수 없는 引力의 덩어리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로... “...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기억할 만한 지나침」.

  성장통을 겪고 있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함께 휴양지에 가게 된 현... 아스라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 중년이 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망상으로 읽다. “.. 출렁이는 바닷속에서는 전날 밤 욕조 속에서 들었던 밤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물속에 잠긴 그녀는 입을 벌리고 그 소리들을 맛보았다. 입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은 짜고도 압도적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시모임에서 만나게 된 희선씨, 후배 나나, 그리고 화석으로 발견된 25미터 짜리 메타세쿼이아 이야기... “... 한 일들은, 그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우연이라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이 필연 가득한 도시에서 서른 살을 맞이하였거나 서른 살을 지나가 버렸거나 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이렇게 거대한 도시에 사는 한, 하루에 두 번씩 평생 택시를 탄다고 해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같은 택시를 탈 수 없는데, 그런데도 때로 우리는 원래 만나기로 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또 사랑에 빠지고, 코발트블루에서 역청빛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광활한 밤하늘 속으로 머리를 불쑥 밀어넣는 것과 같은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이 도시와 청춘의 우리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리라...”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아내의 대화 상대라고 하는 외국인 친구 사트비르 싱, 피아노를 조율하기 위해 들렀다는 그의 방문을 받은 나, 그리고 아직 돌아오고 있지 않은 아내라는 묘한 삼각의 편대와 이들을 폭폭하게 내려덮느라 내리는 눈의 묘한 분위기... “... 나는 가만히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숲과 잠에서 깬 아이와 사원의 기둥처럼 늠름한 다리를 가진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저는 외롭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고독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는 쓸쓸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치 눈이 내리는 밤에 짖지 않는 개와 마찬가지로 저는……”

  「내겐 휴가가 필요해」.

  사회적이지만 반드시 사회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이 몹쓸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잘도 베어내어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 무작정 씁쓸한 것만도 아니다. 어쩌면 이제는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이게도 되었다는 점은 슬프지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같은 제목의 장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소설에서도 사진이 일종의 열쇠 작용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 단편 소설 속의 사진은 흑두루미가 있는 노을 사진... 아이가 없는 부부, 아내가 집필해야 하는 사진가에 대한 에세이, 아내가 일본에서 만나는 자이니치 대학생, 그리고 그 대학생이 사귀었던 ‘미아’라는 이름의 입양아까지... 외롭기 그지없는 인물들의 외롭기 그지없는 삶 혹은 살이에 대하여...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적으면 적을수록 사라지는 이야기 혹은 적으면 적을수록 진실과 멀어지는 이야기 또는 적으면 적을수록 왜곡되어 뒤틀리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 틈나는대로, 자신이 알고 있거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동원해 이야기를 적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분명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달로 간 코미디언」.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여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을 사랑으로 보내고 또 돌연 헤어지게 되었던 여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느슨해 보이지만 또 다르게 바라보면 얼키고 설켜 있는 우리들의 삶의 칸칸에 들이미는 작가의 모호한 시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우연한 일들은 언제나 징후를 드러내는 오랜 기간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김연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문학동네 / 318쪽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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