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1. 2024

우디 앨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상상력과 농담의 부재에 희생되지 않기 위하여...

*2009년 8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요며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뭔가 처음부터 꽤 잘못 되고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 일을 대하는 나의 이런저런 태도로 인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인지도,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이끌어 가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바로 문제라면 나의 어느 부분을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인지, 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가둬놓고 있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 사이 괜스레 옆에 있는 사람에게 투정도 부리고, 사정없이 맑고 쾌청한 하늘 위 구름 바라보며 멍해지기도 하고, 행패라도 부리듯 길 위에서 널부러지기도 하고, 누군가 볼새라 얼른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버텨보려 했지만 그것이 잘 안 되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리고 아직 어떤 해답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이번 책에서 내게 부족한 길 위의 속성을 끄집어 내었으니 그건 바로 ‘상상력과 농담의 부재’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얼마전 개봉된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감독으로 내 마음 속에 다시 한번 금쪽같은 일침을 가해주었던 우디 알렌의 이 책은 상상력과 농담으로 가득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열여덟 편의 꽤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은 우리들의 상식을 상상력으로 전복시키거나 우리들의 일상을 짓궂은 농담으로 어지럽히면서, 영화를 통해서도 여실한 우디 알렌의 장난기로 충만하다.


  “오렌지의 과즙은 오렌지가 명백히 오렌지이게 하는 바로 그 본성, 즉 내가 정의하자면 오렌지의 본질이다. 그것은 오렌지에 ‘오렌지스러움’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오렌지가 삶은 연어 맛이나 모래 씹는 맛이 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차라투스틀는 이렇게 먹었다』와 같은 단편에서는 니체와 아이스킬로스와 스핖노자와 바그너와 칸트를 제 마음대로 넘나들며 아침 점심 저녁 식사의 레시피에 대한 피곤하기 그지없는 고찰을 하기도 하고,


  “... 출발이 예정보다 한참이나 늦어진 건 이륙 직전 화물칸에서 탈출한 코브라 때문이었다. 비행기는 활주로에 멈춰 섰고, 결국 승무원들이 비행기 동체를 거꾸로 뒤집어 뱀을 잡은 후에야 우린 다시 이륙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가치와 몸값은 비례하지 않아』와 같은 단편에서는 여행이라는 일상에 스며든 초인적인 힘에 의하여, 농담이 지배하는 우리들 인생은 어정쩡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예정된 운항이 항상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속수무책의 진리를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사형수 감방에 수감된 스텁스를 면회하러 갔다. 그는 끝없는 항소를 통해 십 년째 교수형 집행을 미뤄오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감방을 공부방 삼아 무역을 공부했고, 일급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땄다. 드디어 최종 선고가 내려지던 날, 나도 방청석에 앉아 결과를 지켜보았다. 스텁스는 나이키와 교수형 집행 텔레비전 독점 중계권 계약을 맺고 엄청난 돈을 챙겼으며, 마침내 사형 집행일이 당도하자 정면에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검정 두건을 쓰고 교수대에 올랐다.”


  그런가하면 『법 위에 사람 없고, 침대 스프링 밑에 법 없다』와 같은 단편에서는 은근슬쩍 우리 사회의 단면을 심각하지 않게 들여다보면서 배꼽잡을만한 유머를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이크는 곰으로 오해받기에 딱 좋은 곰 같은 사내다. 오죽하면 동물원들에게 진짜 곰이 병들었을 때 대타로 뛰어달라는 제의까지 받았겠는가” 라며 아예 대놓고 유머를 즐기기도 한다.


  일상에 찌든 자들에게, 난장의 상상과 난도질의 농담으로 무장한 채 그 일상 속으로 훠이훠이 쳐들어가서, 그 일사분란해야만 할 것 같은 일상을 마음껏 유린함으로써, 오히려 그 일상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도록 하여라, 라고 말하는 듯한 우디 알렌의 책을 보자니, 그렇게 그의 영화 속에서 번뜩이는 농담의 기저가 어디에 있나를 어리짐작 할 수 있다. 한번 너그럽게 들여다볼만한 책이다.

 

 

우디 앨런 / 성지원, 권도희 역 / 이우일 그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Mere Anarchy) / 웅진지식하우스 / 239쪽 / 2009 (2007)

매거진의 이전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모든 것이 밝혀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