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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4. 2024

우디 알렌 감독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욕망과 집착의 연애, 우디 알렌식으로 통과한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한껏 고무되었던 마음의 상태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보여 주었던 한없는 욕망의 탐닉, 그러면서도 동시에 즉흥적이고 자유롭기 그지없는 마리아라는 캐릭터가 내뿜던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탓에 가능했던 기분은 물론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쉽사리 고양된 감정은 고작 한 줌의 흩뿌려진 물에도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식어버리기도 하는 법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쌈마이스러운 상황 전개에도 장인 정신을 투여하고 마는, 우디 알렌의 감칠맛 나는 대사들이 가득한 이 영화의 재미있는 여운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현대인의 사랑에 대한 우아한 고찰, 은 절대 아니지만 흔하디 흔한 연애의 공식들에서는 어지간히 비껴나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은 이 우디 알렌표 영화는 (그렇고 그런 로맨스 코미디물의 심심함과는 먼 거리에서) 싱싱한 코멘터리를 마구 자극하고 있다.


  영화는 두 명의 미국인 처녀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바로셀로나 여행으로 시작된다. (뉴욕을 떠나 런던을 비롯해 유럽의 도시를 유랑하는 우디 알렌을 닮았다고나 할까. 특히 이 영화는 바로셀로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디 알렌이 그의 메모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어 만들었다고 하니.) 그리고 이들이 그곳에서 그곳 출신의 화가 후안으로부터 색다른 여행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흥분도 만점의 전개를 이어간다.


  후안의 제안에 마뜩찮은 반응을 보이던 비키, 그리고 쓰리썸의 제안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던 크리스티나는 그러나 막상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탈이 난 크리스티나가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잘 나가는 약혼자를 둔) 보수적인 비키는 달콤한 스패니쉬 기타 연주에 취하고 후안의 눈빛에 취하여 그만 후안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들 삼인의 얽히고 설킨 여행지 썸씽 로맨스인가 싶어지지만 여행을 마치고 난 뒤 비키는 억지로 정신을 추슬러 제자리로 돌아오고 (아니 돌아온 것처럼 행동하고), 크리스티나는 결국 비키의 친척집에서 나와 냉큼 후안의 작업실로 자신의 거처를 옮겨 버린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후안의 전 아내이자 예술가적 재질과 본능으로 똘똘 뭉친 마리아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마리아를 꼭지점으로 하여 크리스티나와 후안을 아우르는 삼인 체제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마리아의 등장에 얼핏 당혹스러움을 보였던 크리스티나지만 곧 두 사람의 섹스를 격려하고, 결국 서로가 서로를 성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공유함으로써 한껏 안정된 형태의 관계를 보여준다. (아마도 영화의 한글판 제목인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이 대목에 기대어 등장한 것이겠지만 어째 조금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또 이러한 발랄한 단순함이 우디 알렌스러운 것도 같고...)  



  하지만 이래서 또 이들 세 사람의 안정된 삼각 구도로 영화가 쭈욱 정리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세 사람의 한 축인 크리스티나가 갑작스러운 공허감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후안에 대한 마음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갈등하던 비키가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고, 또 그 사이 크리스티나가 떠나면서 자리를 비웠던 마리아가 재등장하면서 총을 쏘아대는 또다른 난장이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스포일러의 남발이다. 그치만 뭐...)


  여하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감독이 즐겨 보여주던 (그 자신이 연기를 겸함으로써 더욱), 자학적이기까지 한 미국의 (혹은 뉴욕의) 중간 계층 혹은 지식인 계층에 대한 수다스런 경멸의 테크닉이 실효를 다한 즈음에 시작된 (뉴욕을 떠난 그의) 유럽발 영화들, 이러한 우디 알렌의 영화 이력서가 새롭게 퍼올린 또다른 정수가 아닐까 하는 영화이다.    



  완벽에 가까워보이는 캐릭터 구사력을 보여준 페넬로페 크루즈나 스칼렛 요한슨의 캐스팅, 뉴욕을 떠난 우디 알렌이 후안의 입을 빌려 계속해서 영어로 말하라고 외치고 그 와중에도 OST에서는 바로셀로나가 연호되는 상황이 주는 우디 알렌식의 절묘하고 집요한 아이러니들, 여기에 군더더기 없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하게 시작하고 끝을 맺는 우디 알렌의 연출력이 결합되어 펄떡거리는 영화 한 편을 잘 건져 올린 셈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 우디 알렌 감독 /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스칼렛 요한슨, 레베카 홀 출연 / 96분 / 20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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