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대신 현재를 영광스럽게 하라는 일침...
1989년쯤일 것이다. 도통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나를 향하여 영어 회화를 가르치던 강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냐고 물었다. 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고, 그 강사는 그 소설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두 사내의 이야기라고 했고, 그 강사는 그 두 사내의 캐릭터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미키 루크와 니콜라스 케이지와 같은 인물들이라고 말했던가. 덧붙여 나는 그저 섹시하기만 한 것 같은 외모에 감추어진 미키 루크의 연기처럼 자욱한 허무가 좋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인 하프 위크>의 초절정 섹시 가이로 세상 모든 여자들의 심장을 간지럽혔던 미키 루크는 어느 날 프로 복서의 길에 들어섰고 (듣기로는 초반에는 9승 무패의 전적을 기록했던 적도 있다고 하던데), 망가진 얼굴 때문에 성형 수술을 감행해야 했고, 그 성형 수술이 실패하면서 예전의 꽃미남 스타일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후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영화 <더 레슬러>는 이처럼 다사다난하기 그지없는 미키 루크의 인생 역정과 오버랩 되면서 개봉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전설로 가득한 전적을 자랑하는 레슬러 ‘랜디’는 생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중이다. 후배들과 함께 링에 올라 아직까지 자신을 잊지 않고 있는 팬들을 위해 면도칼로 자신의 이마에 상처를 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왕년의 라이벌과의 재대결을 앞두고 있는 어느 날 랜디는 그만 스테로이드제의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라이벌과의 재대결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제대로 돌보지 못한 딸과의 재회에 반가와 하고, 그러한 딸과의 불화에 풀이 죽으면서, 스트리퍼 캐시디와의 작은 데이트에 기뻐하고 그녀와의 다툼으로 실의에 빠지며, ‘로빈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동네 할머니에게 샐러드를 판매하는 것으로 레슬러이기를 포기하던 ‘랜디’는 어느 날 자신을 옥죄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링 위의 세계로 돌아선다.
“내가 다치는 곳은 바깥 세상이야. 바깥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얼굴이 찢기고 등에 유리가 박히고 온갖 생채기들로 피범벅인 링, 하지만 랜디는 오히려 그 링을 떠나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닥쳐오는 생채기들에 더욱 힘겨워한다. 비록 수술 자욱이 선명한 심장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오히려 그를 안심시키는 것은 링 위에 오르는 순간이다. 그렇게 자신의 주특기인 램잽을 위하여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아슬아슬 링 위에 올라 두 손을 번쩍 들고 링을 향하여 뛰어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꽤 감동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어떤 쓸쓸함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도 나를 사로잡은 쓸쓸함은 쉽사리 가시지를 않았다. 모두들 미키 루크의 재기를 반가와하는 것 같았지만 어쩐지 쇠락하는 것의 마지막 포효를 본 것처럼 울적하였다. 어지간해서는 영화 속의 인물에게 동화되지 않는 타입인데도, 영화 속 미키 루크에게 심히 동요되고 있는 내가 조금 우스웠던 것도 같다.
이십여년 전 아둔한 머리로는 지탱이 되지 않는 터질 듯한 심장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또 외치기를 주저하지 않던 나를 영화 속 비상하는 미키 루크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고 해야 할까. 주저 앉아 그렇게 날아오르는 미키 루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고나 해야 할까. 망가진 미키 루크의 얼굴을 바라보며 (<씬 씨티>에서도...) 뭉클해지는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더 레슬러 (The Wrestler) /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 미키 루크, 마리사 토메이, 에반 레이첼 우드 출연 / 109분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