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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6. 2024

숀 엘리스 감독 <캐쉬백>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멈춰진 시간의 틈 사이로 촘촘한 사랑...

  사랑에 희망을 품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 18분짜리 단편영화로 제작되었다가 여러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고, 이를 기폭제로 삼아 장편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된 어여쁜 사연을 지닌 영화를 조금 늦게 보게 되었다. 늦게 당도한 영화를 보는 일은 늦게 당도한 사랑을 대하는 것과도 조금은 닮아 있어서, 허심탄회한 유쾌함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애틋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은 벤을 향하여 무언가를 외치는 수잔을 정면에서 잡은 슬로우 모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2년 반을 사귀었던 수지는 벤을 향하여 그 종말을 고하는 중이고, 벤은 그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곱씹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벤은 잠못 이루는 시간으로 가득찬 이별의 순간들을 겪다 지쳐, 자신의 잠못 이루는 시간을 동네 슈퍼마켓의 심야 아르바이트에 내준다. 시간을 주고 돈을 받는 이름하여 캐쉬백...


  그리고 그곳에서 벤은 샤론을 비롯해 배리와 매트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자신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기로 한다. 그렇게 벤은 이제 늦은 밤 시간을 멈추게 하여 놓고 슈퍼마켓에 들른 여자들의 나체를 그리며 (벤은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잠못 이루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샤론을 향한 연정을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나쁜 소식은 시간은 빠르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여러분이 조종사라는 거에요.”


  이제 벤은 남미와 같은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샤론을 자신의 스케치북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주째 잠을 이루지 못하던 벤은 슈퍼마켓 지배인의 생일 파티에 함께 가기로 샤론과 약속을 한 날, 드디어 잠이라는 자신의 시간을 돌려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다음날 파티에서 벤은 헤어졌던 수지를 만나게 되고, 수지의 억지 키스를 받는 순간을 샤론은 목격한다. 그렇게 샤론은 등을 돌리고 벤은 그 순간을 멈춰 놓은 채 홀로 이틀을 보낸다.


  “시간을 멈출 수도 있고 빨리 가게 할 수도 있고 느리게 가게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손가락을 꺾어 다시 시간이 움직이도록 만든 뒤 샤론을 따라 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시작되는 찰나에 스러져버린 사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 이제 장난으로 시작되었던 갤러리에서의 미팅이 씨앗이 되어 가지게 된 벤의 첫 번째 전시회로 장소는 옮겨진다. 그곳에는 샤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가득하고 전시회에 초대된 샤론은 그런 작품들에 둘러싸인채 벤과 마주하고, 두 사람은 내리던 눈마저도 멈춘 거리에서 다시 한 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예전에는 사랑이 뭔지 알고 싶었어요. 사랑은 당신이 원하는 곳에 있죠. 그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쌓여 있고 인생의 사이에 숨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잠시 멈추지 않으면 그걸 놓칠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기시감으로 가득하지만) 시간을 멈춰 놓고 홀로 움직인다는 상상력도 그럴싸하며, 그 시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는 설정도 좋고, 나레이션을 통해 발표되어지는 감독의 사랑과 시간에 대한 경구도 나쁘지 않다. 휘몰아치는 젊은 사랑을 향하여 보내는 작가의 발랄하면서도 관조적인 (참 이러기 힘든데...) 영화적 구성도 좋다. 그리고 매몰차지 않은 마지막 장면의 훈훈함까지...



캐쉬백(Cashback) - 숀 엘리스 감독 / 숀 비거스탭, 에밀리아 폭스 출연 / 101분 / 20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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