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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9. 2024

츠츠이 야스타카 《최후의 끽연자》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2009년 대한민국에서 SF를 읽는 법...

  세상이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아니 때때로 세상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서 우리를 당혹케 한다. 어쩌면 츠츠이 야스타카와 같은 작가는 이러한 우리의 당혹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미리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저 너머의 것까지를 미리 상상한다. 그렇게 SF의 거장들은 자신들의 상상을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우리들을 비상시에 대처하게 만드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급류」.

  “그 이변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한 것을 알아챈 순간, 그 빨라지는 시간의 가속도를 계산했다면 과거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빨라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역산해낼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계산에 필요한 시계까지 모두 이상해져버려서, 아니,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빨라지는 시간에 발맞춰 덩달아 빨리 돌기 시작한 탓에 이미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만 것이다...”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이기도 한 작가는 시간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아무 불편없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작스럽게 흘러내리는 급류처럼 빨라진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조차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작가가 경외롭다.


  「최후의 끽연자」.

  금연운동의 확산과 함께 어느 순간 반체제 인사가 되어버린 분위기의 끽연자들, 하지만 그들조차도 하나 둘 전향을 선언하고 결국에는 국회의사당 꼭대기까지 내몰린 최후의 끽연자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최후의 일인으로 남은 끽연자는 결국 죽음에의 자유마저 구속당하게 되는데...


  「노경의 타잔」.

  이제 늙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 타잔이 ‘늙어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이 목숨. 유감없는 구박과 심술을 최대한 즐겨보는 거야.’ 라고 마음 먹는 순간 정글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난교의 흥미진진함...


  「혹천재」.

  외계에서 발견된 ‘럼프티 험프티’라고 불리는 벌레를 자신의 등에 붙이는 순간 인간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두 배 이상으로 훌쩍 키울 수 있다. 등에 혹은 생기지만 우수한 지적 능력은 다른 사람을 쉽사리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등에 혹을 붙여 혹천재가 되는 것이 정말 좋을까? “... 혹천재들의 그 꼬락서니를 보라고. 걸핏하면 동료들과 쌈박질이지 단골 거래처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지 상사의 무능을 규탄하지, 울고 보채고 난리도 아니야. 그래서 경영자들은 이 지경이라면 천재가 아닌 사람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야.” (우리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주의로 그득한 일본 사회를 향해 보내는 작가의 통찰력 가득한 비웃음이 돋보인다.


  「야마자키」.

  소설에 실려 있는 일본의 옛 시절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일본사에 문외한인 사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1500년대의 어느 순간에 갑작스레 신칸센이 등장하며 역사의 한 순간의 비어버린 공백을 패러디하는 듯하다.


  「상실의 날」.

  SF라고 부르기는 어렵겠고, 겸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 가득한 현대인이 보여주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행태를 비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면 <혹천재>와 일맥상통 한다고도 할 수 있는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첫경험 사수기 쯤이라고나 할까.


  「평행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의 차원일 뿐이며, 다른 차원에서는 나와 똑같은 이가 나와 똑같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은 이제 영화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이미 1975년에 발표되었고, 그의 차원은 끝도 없어 보인다.


  「망엔 원년의 럭비」.

  일본의 중세 혹은 근대를 그리고 있으니 <야마자키>와 비슷하다. 이번에는 사라진 다이로의 목을 둘러싼 양쪽 닌자들간의 싸움에 럭비라는 운동 경기를 절묘하게 접목시켜서 (그러니까 이 죽은 자의 목은 럭비공 쯤이 되려나) 당시를 풍자하고 있다.


  모든 작품들이 아주 그럴싸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작가의 단편소설들 중 특히 블랙유머에 속하는 작품을 선정해서 (작가가 직접 붙였는지 아니면 편집자가 붙인 것인지) 일본에서는 ‘자선 뒤죽박죽 걸작집’ 이라는 부제까지 달아 발표한 작품이라고 한다. 만약 츠츠이 야스타카의 작품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이 읽으면 아주 적당하지 않을까...

 

 

츠츠이 야스타카 / 이규원 역 / 최후의 끽연자 (最後の喫煙者 ) / 작가정신 / 261쪽 / 20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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