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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0. 2024

조경란 외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의 삶이 조용조용 머물러 있는 지점을 알아차리는...

  조경란 「그들」

  “... 여자는 추워서 그러는 듯 한 손을 목뒤로 넘겨 등에 늘어진 긴 머리를 모아 잡더니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웅크린 여자는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 떨어진 데서 보면 사람들은 외롭거나 슬퍼 보였다... 사장이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종소는 그래서 가슴이 조금 뛰었다.” (p.20) 살아가는 일은 드물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은 살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조용 머물러 있다. 거기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작가는 삶이 조용조용 머물러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종소와 영주, 그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 작가다. 


  신용목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 레닌은 경험 많은 사람이 으레 가질 법한 편견이나 고집이 없었다. 오히려 ‘알게 된 것’을 말하기보다는 여전히 ‘느끼는 것’을 말할 줄 알았다. 가령, 시간이 흐르면 자갈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흙이 되고 흙이 아주 작아져 공기처럼 부서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어둠의 질감이라고 했다... 시인 같다고 하자, 그는 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들어 파리를 쫓듯 자신에게 날아든 칭찬을 지웠다.” (p.74) 찾아보니 작가의 시집을 네 권 읽었다. 한 권의 산문집도 읽었다. 그러니까 시인의 소설이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여기게 되는 부분들이 종조 나온다. 소설의 배경에 순례길이 있는데, 아내와 내가 더 늙으면 가기로 한 그 길이다.


  조해진 「내일의 송이에게」

  어제의 송이와 오늘의 송이가 안타깝다. 내일의 송이에게 지금 희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착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된다. 어쩌면 장훈이 그 길을 함께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장훈 또한 어제와 오늘이 송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응원하고 싶다. 세상의 많은 송이들과 장훈들을 응원해야 한다.


  반수연 「조각들」

  이민자의 녹녹하지 않은 삶이 있다. 그 삶의 원동력이었던 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방향으로 훌쩍 자랐다. 딸은 일찌감치 독립하였고 어쩌면 나보다 더 독립하였는 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삶이 아니라 뿌리를 옮겨 그 뿌리가 옅어진 삶의 단면이 담겨져 있다.


  안보윤 「그날의 정모」

  제목을 보고는 어떤 모임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정모’는 사람의 이름이고, 그는 나의 동생이며 정신적으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정모의 부모 그리고 정모의 누나인 내가 겪는 힘겨움이 소설에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의 힘만으로 나아가기에는 역부족인, 우리의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재가 있다.


  강태식 「그래도 이 밤은」

  “브라이언은 여전히 여자의 얼굴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잠깐 떼었다가 다시 가져다댄 것인지도 몰랐지만 행크가 볼 때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행크는 카페 밖에 서서 아들의 모습을 한동안 더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일부가 그곳에 남아 계속 아들을 지켜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p.246) 독특한 설정이다. 아버지가 아들이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한다. 얼마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회자가 되었던 내용인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줄을 몰랐다. 설정도 독특하지만 등장인물과 그 배경을 한국이 아니라 외국으로 삼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미국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승은 「조각들」

  소시민의 몰락은 크기에 상관없이 슬프다. 서경이 겪는 모든 일은 어쩌면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다. 조각품의 떨어진 조각처럼 그의 삶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셈인데, 그 작은 떨어져나감으로 이해 조각품은 아예 형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세공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같은 제목(‘조각들’이라는)의 소설이 실려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38쪽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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