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작가의 조리 있는 혼란스러움...
90년대 초반에 나온 소설은 동성애의 다양한 국면을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당시의 미국이라면 이러한 부류의 소설들이 꽤 활기차게 나오고 있었으리라 예측된다. 게다가 작가 스스로 커밍 아웃을 하면서, 소설의 내용에 대하여 허구인지 실제인지에 대한 이런저런 억측도 난무했을 듯하다. (아마도 일본의 BL물들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BL물 매니아인 아내를 두고는 있지만 아직 한 편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사소한 방식으로 만났을 뿐이다. 한 줄기의 땀, 물이 마르며 생긴 진흙 자국, 상처 딱지, 키스...”
소설은 우리들이 흔히 보는 형식을 띠고 있지 않다. 이야기들은 시간의 순서대로 혹은 한 인물의 삶의 궤도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독자들은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마틴과 부지불식간에 마주치고는 (마치 존이 그러한 것처럼) 당황할 수밖에 없다. 형을 잃은 존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집에 나타난 마틴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의지를 하고 난 이후 소설 속의 모든 존은 계속해서 마틴에게 집착하는 듯하다.
“... 나는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어느 무더운 오후에 어머니의 더블베드 위에서 의붓아버지에게 동정을 잃었다. 몸에서 소금기 있는 땀이 흘러내렸고, 침대는 우리의 몸무게에 짓눌려 늙은이처럼 삐걱거렸다...”
물론 존과 마틴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성애와 비교하여, 스스로 어떤 불안감을 느껴야 하거나 때때로 주변에 의하여 도발당해야 하는 동성애라는 하나의 경험을 하고 있으되, 언제나 허기진 상태로 채워지지 않는 욕망 앞에서 주저하는 존은 마틴에 비하여 좀더 숙명적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존은 간혹 나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의 마틴은 언제나 그일 수밖에 없다.
“... 세상은 매 순간 역사를 축적하지만, 나는 내 몸이 밀랍으로 코팅되어 있기라도 하듯이 과거를 벗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앞날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앞날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마주치는 것 같으면 고립되는 것을 반복하며 속절없이 파편처럼 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은 그러나 어쩔 수 없게도 하나의 뿌리로부터 위로 솟아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누구의 경험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으며, 실제하는 이야기이든 허구의 것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들 주변에 있는 이야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론되어야 할 문제이니 말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인생의 합은 경험의 합이 아니며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가피하게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들은 한 차례 여기에 나타났으나 존이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기억하고 있는 어떤 것들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소설의 또다른 축은 소설을 쓰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나름대로 보여주는 데에 할당되어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를 작가의 이야기로 읽을 수밖에 없는 여러 부분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의 이야기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절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것인지 조금 망설였던 것도 같다. 그리고 작가가 내린 판단은 당신들이 알아서 생각하시오, 라는 결론의 유보가 아니었을까...
“기억은 나의 유일한 재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소유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내가 썼던 최초의 문장을 기억한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일이다. 그런 다음 글 쓰는 것을 멈추었다. 다음 문장을 쓸 수가 없었다. 비록 아주 많은 것들, 즉 이미지, 소리, 감각, 심지어 누가 맨 먼저 썼거나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문장들까지 최악이라는 영예를 누리기 위해 서로 다투었지만, 그 모든 것 중 가장 최악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첫 문장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일은 아니다. 그런 다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이야기들을 썼다. 그 이후로는 어떤 게 실제이고 어떤 게 지어낸 것인지 모를 만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한층 조리 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작가의 혼란스러움 만큼이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나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동성의 사랑에 대해 애꿎은 시선을 보내지는 않지만 아직 그것을 매우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탓이다. 그러니 그들의 애틋함에 몰입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시기상조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나누는 사랑을 폄하할 처지 또한 아니다. 그러니 그저 이렇게 묵묵히 읽을 따름이다.
데일 펙 / 서창렬 역 / 마틴과 존 (Martin and John) / 민음사 / 273쪽 / 2008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