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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7. 2024

윤고은 《무중력증후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희화화일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매일 출근을 하여 일을 하고 있는 사무실, 바로 내 책상 아래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구멍이 하나 있다. 나는 어느 날 혼자 발장난을 하다가 그 구멍을 발견하게 되고, 그 구멍을 통하여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프레리독의 친구가 되고, 순진하지 않은 사막 여우와 적이 되고, 발정난 팬더에게 쫓기는 뭐 그런 꿈... 

 

  “달이 번식한 후, 지구 곳곳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었던 무중력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호시탐탐 무중력의 세계-지구 궤도 밖-로 나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적은 달이 그들에게는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달이 늘어났다는 것은 무중력자들의 입지가 더 커졌음을 의미했다...”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은 하늘의 달이 번식을 하고, 이러한 달의 번식 이후 지구에 있는 우리들이 겪게 되는 전사회적인 혼란의 상황을, 그러니까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고자 하는 무중력자들 혹은 무중력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등장을,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현재는 부동산 텔레마케터를 하고 있는 나 노시보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언론 혹은 여론이라 불리워질 수 있는 현대인들의 조금은 어이없는 그룹화 과정을 몬도가네식 카니발과 연관시키면서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은유로 우리들을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 소설가 구보를 지향하는 나의 친구 구보씨, 그리고 객관적인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주관적인 창조자로 군림하려 하는 기자 송효주(퓰리처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가 가세하면서 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는 몸집을 불려간다. 

 

  “원래 있던 달과 늘어난 달은 함께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지만, 육안으로는 새 달을 볼 수 없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력은 끝도 없이 자라났다. 상상에는 임계지수가 없었다. 인터넷 속에서는 달이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부터, 달이 곧 충돌할 조짐을 보였다는 사람까지 나타나서 모든 상식들을 헝클어놓았다.” 

 

  게다가 퇴직 후에 ‘멸종 중인 기원(棋院)을 찾아다니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홀로 남겨둔 채 달을 찾아 떠나버린 엄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고시원에 살면서 요리에 매진하고 있는 형이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종횡무진 우리들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여기에 우주적 섹스를 표방하는 직장 동료인 이과장과 홍과장이 덧붙쳐지지니 점입가경의 상황... 

 

  “그거 끝났어요.” “끝나다뇨?” “아예 처음부터 없었답니다. 그런 병이.” “병을 진단하신 건 선생님이시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내 참... 아무튼 돌아가셔서 뉴스 좀 보세요. 우리가 다 속았다 그겁니다.” “누구한테요?” 

 

  하지만 불현듯 나타났던 달은 불현듯 사라지고 아니 나타났던 사실조차 희미해지고, 여전히 무중력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만이 시대착오적인 낙오자로 여전히 건재하고, 기자 퓰리처는 이제 새로운 징후의 발굴에 뛰어들고, 지상에 발붙이고 남은 무중력자들 또한 이제는 새로운 증후군에 편입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소리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로 여전히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올해의 문학상들에서도 젊은 여성 작가들의 약진은 여전해 보인다. 하지만 어딘지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생긴다. 그들의 재기발랄함과 색다른 여유는 유효하다고 보지만 문학적 함량 미달을 보상할 수 있는 정도인지 의문스럽다. 그들의 소설이 보여주는 빈 공간이 채워질 수 없는 여백이 아니기를, 조금은 진정으로 바래본다. 

 

 

윤고은 / 무중력증후군 / 한겨레출판 / 296쪽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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