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향하여 가혹하다 싶게 미시적으로 들이대는 소설가의 시선...
어떤 이의 하루, 그리고 한 권의 소설... 성석제는 몇 초를 가지고 한 편의 단편소설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언 매큐언이 의사 헨리 퍼론을 내세워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새벽부터 (이 날은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라고 함) 다음 날 새벽까지의 하루를 한 권의 소설로 만들었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 최근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그는 더 이상 현재에 있지 않다. 살풍경한 광장, 비행기와 단순 사고로 끝난 화재, 부엌에 있던 아들, 침실의 아내, 파리에서 오는 딸, 거리의 세 청년…… 그의 시간 좌표가 잘못된 것이거나, 아니면 그가 그 모든 순간들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거나...”
소설은 의사인 헨리 퍼론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다른 때보다 이르게 잠에서 깬 헨리는 창밖으로 불이 붙은 비행기를 발견하고, 주방에서 아들인 테오와 이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그의 하루의 시작과 함께 이 치밀하다 못해 권태로울 지경인 초현실주의풍 세밀화를 닮은 소설은 전개된다.
“... 어느 순간엔가 논리마저 해체되자 그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조수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긴다. 생각은 혼탁한 강 물결과 뒤섞이고, 서툰 손놀림으로 매듭진 밧줄을 풀어내듯 유쾌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조금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권태로움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들을 소설 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 별다른 스토리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조근조근 따라가는 것 뿐인 듯 보이지만 그 속에 거부하기 힘든 우리들의 일상이 있다. 아내인 로설린드, 아들인 테오, 딸인 데이지, 장인인 그라마티쿠스와 동료 의사인 제이와의 만남 혹은 그들에 대한 상념은 스토리라고 부르기인 민망하지만 나름의 에너지를 가지고 독자들을 추동한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도 서서히 폭발은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의외의 폭발은 거리를 가득 메운 반전 시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위대를 피하려 들어선 거리에서 만난 건달 패거리에 의해 헨리 퍼론의 폭발은 일어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박스터에게서 ‘퇴화하는 정신의 진수’를 발견함으로써 간발의 차이로 피한 것처럼 보이는 그 폭발로부터 달아난다.
“이것이 바로 퇴화하는 정신의 진수다. 주기적으로 일관된 자기상을 완전히 상실하며,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 일관적이지 못한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로부터 날아오는 이제는 어엿한 시인이 된 딸 데이지 그리고 손녀딸 데이지와의 화해를 위하여 딸네를 방문하는 헨리의 장인 그라마티쿠스, 할아버지에게 배운 기타 연주로 이제 블루스 밴드를 이끄는 테오까지 한 자리에 모인 저녁, 가족의 마지막 주자 헨리의 아내 로설린드가 들어서면서 소설은 갑작스럽고도 당황스러운 새로운 지경으로 치닫는다.
“... 그는 어떤 한 가지 생각의 중심점 위에서 떨어지기 직전, 균형을 잡고 있으며, 따라서 앞을 차분히 내다볼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상상하는 것은 동쪽으로 회전하는 지구, 시속 1660킬로미터로 장엄하게 이동하여 그를 새벽으로 이동시켜주는 지구인지도 모른다. 하루를 시계가 아니라 잠으로 분할한다면, 지금은 아직도 토요일일 것이며, 그는 저 아래, 한평생의 시간만큼 깊이 잠겨 있을 것이다...”
거대담론이 판을 치는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개인에게는 우주와 맞먹을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의미있는 일일 터이다.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헨리 퍼론의 입장(이 작가의 입장인지 궁금하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되, 한 개인의 어떤 하루를 대상으로 한 이언 매큐언의 투철해 보이기까지 한 소설 작업의 정신에는 한 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언 매큐언 / 이민아 역 / 토요일 (Saturday) / 문학동네 / 479쪽 / 200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