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삶을 돌파한 박복한 베타 남성의 이야기...
“... 수많은 경제 체제를 거치는 동안 체구와 힘, 스피드, 잘생긴 외모 등 특출한 체격 요건을 지닌 알파 남성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선택되어 진화한 반면, 베타 남성의 유전자는 당면한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측하고 피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 베타 남성이라고 할 수 있는 찰리 에셔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출한 요건’이라고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이 소심하고 의기소침하며 겁도 많은, 쓸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다수의 남성 중 하나인 이 알파 남성의 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는 베타 남성인 찰리 에셔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은 한 편의 도시 리얼 블랙 유머 환타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타 남성이 살 길은 오로지 충성이다. 그는 좋은 남편이 될 뿐 아니라 최고의 친구가 된다. 여자가 아프면 여자를 부축하고 수프를 끓여 대령한다... 베타 남성은 믿을 만하다. 베타 남성 친구가 있다면 보통은 그에게 안심하고 여자 친구를 맡겨도 된다. 물론, 애인이 무지하게 헤픈 경우는 예외다...”
하지만 이런 베타 남성에게도 기회가 없지는 않은 법이어서 찰리는 베타 남성이 간혹 쥐어짜기도 하는 환상적 용기 덕분에 레이첼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였으며 소피라는 예쁜 딸아이까지 낳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베타 남성의 행운은 여기까지... 딸을 낳은 후 레이첼은 병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순간 찰리는 우연찮게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우는 사람을 보게 되고, 자기 자신도 바로 그 죽음의 상인의 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찰리의 일상은 범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 당신의 임무는 죽었거나 죽어 가는 사람에게서 영혼의 그릇을 수거하고 그것이 다음 사람의 몸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실패할 경우 어둠이 세상을 덮고 혼돈이 득세하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영혼의 그릇이 땅 밑에서 온 자들 손에 넘어가도록 하지 말 것! 아니면 일이 고약하게 꼬일 테니까.”
덩그러니 남은 딸을 이웃집 아줌마들 그리고 누이인 레즈비언 제인에게 맡기며 겨우 기력을 차려 세상으로 나와 자신이 ‘죽음의 상인’ 임을 이제 겨우 받아들이게 된 찰리에게는 새로운 위기가 닥친다. 그것은 지하 세계에 갇힌 채 지상 세계로 발돋움을 할 기회를 노리는 의인화된 까마귀 남매인 모리안과 이들의 우두머리인 황소머리 죽음의 신인 오르쿠스와 맞장을 떠야 한다는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그 사이 자신이 운영하는 골동품점의 여종업원인 릴리를 착한 학생으로 이끄는 작업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하염없는 쓸쓸함도 느껴야 하고, 또다른 종업원인 전직 경찰 레이에게 연쇄살인범으로 오해받아야 하고, 어린 소피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듯한 거대한 지옥의 개 앨빈과 모하메드에게 개무시를 당하기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동료들과의 오해는 풀리고, 자신을 쫓던 리베라 형사도 자신을 믿게 되며, 동료 죽음의 상인인 민티 프레시의 측면 도움도 받게 되고, 결정적으로 아내를 잃은 이후 다시는 되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사랑의 감정도 영혼을 부활시키는 재주를 지낸 (여자 수도승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오드리를 통하여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찰리는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레이철의 남편이자 제인의 남동생, 소피(죽음의 지배자 루미나투스)의 아버지, 오드리의 사랑, 죽음의 상인, 고급 의류 및 액세서리 납품상 베타 남성 찰리 애셔는 마지막 숨을 토하고 세상을 떴다.”
소설은 ‘팀 버튼의 상상력과 우디 앨런의 유머가 번득이는 블랙 코미디의 정수’라는 광고 카피가 과대포장으로 읽히지 않았으니 나름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까.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며 역할을 하고 있고,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들도 꽤나 싱싱하다. 여기에 베타 남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적절히 끌어당겨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남성들을 위안하는 센스까지 더해지며 소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별한 이야기를 통하여 각박한 삶을 돌파할 수 있는 어떤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무어 / 황소연 역 / 더티 잡 (A Dirty Job) / 민음사 / 553쪽 / 200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