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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02. 2024

이케가미 에이이치 《샹그리라》

세계 경제의 애니메이션적 미래 혹은 장르 불분명 괴소설의 등장...

  일본 작가들의 만화적인 상상력은 언제나 부럽다. 만화책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나 하야호의 애니메이션 <나우시카>나 <라퓨타>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칠백 페이지 분량의 소설은 ‘SF적 감각’과 ‘만화적 상상력’을 결합시켰다는 책날개의 소개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다. 그리고 이 매끄러운 소설의 핵심에는 탄소 시장이라는, 근미래의 경제 단위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탄소 시장은 세계 경제의 핵심이었다. 시장은 실질 탄소와 경제 탄소로 나뉜다. 온실 효과를 발생시키는 대기 중의 탄소를 실질 탄소라고 한다. 처음에는 각국에 이것을 감축하도록 했지만, 생각했던 만큼 목표치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 탄소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경제 탄소는 구시대의 이자에 해당한다. 각국에 부과된 실질 탄소 감축량을 넘어서서 추가 감축할 경우, 이자분의 경제 탄소가 발생한다. 실질 탄소를 감축하는 데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경제 탄소의 양도 늘어난다. 시장에서 변동하는 것이 이 경제 탄소였다.” 

 

  그러니까 인간들에 의해 자행된 환경 파괴가 극심한 즈음 세계는 이러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하여 탄소라는 새로운 개념을 시장에 적용시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각 나라는 이러한 탄소 지수를 줄여 경제 탄소의 이득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게 되고, 그 선두에 일본이 있다. 일본은 도쿄를 완전히 밀림화시키면서까지 자국의 탄소를 줄여가고 있고, 이렇게 하고 있는 나라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그리고 이러한 탄소 경제가 가능한 것은 아틀라스라는 전혀 새로운 수직의 도시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는 상실과 재생을 반복함으로써 살아남는 도시란다. 제2차 간토 대지진 후 도쿄는 아틀라스로 부흥했다. 그 이전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다 타버린 허허벌판이었다. 도쿄는 50년마다 탈피를 거듭한다. 그것이 도쿄의 활력의 원천이 되었다. 아틀라스 계획을 세운 지도 50년이 지났다. 슬슬 탈피할 시기가 된 거지.” 

 

  높이가 4천미터에 이르고, 그 사이사이 층으로 나눠진 거대한 도시들이 자리를 잡게 되는 아틀라스를 만듦으로써 지상을 온통 숲으로 바꾸면서도 도시의 기능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도쿄는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도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아틀라스라는 새로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지상에서 아직 밀림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의 게릴라 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쟁도 환경 파괴를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하는 것이 이 세계의 룰이었다. 무차별 파괴했다간 다음 날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무기를 만들 때 화력보다도 방어를 중시한다. 의태장갑은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 낸 신무기였다.” 

 

  그런가하면 이러한 게릴라전과 국지적인 전쟁에 새롭게 도입된 무기가 있으니 바로 의태장갑이다. 무엇으로든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는 이 의태장갑을 이용하여(그러니까 터미네이터의 그 액체 로봇과 같은데, 생물체로의 변신 뿐만 아니라 무생물체로의 변신도 자유자재라는 점이 다르다) 아틀라스는 전세계적인 규모의 작전을 수행하고, 지상의 반정부 게릴라 조직인 ‘메탈 에이지’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데... 

 

  50년 단위로 탈피를 한다는 일본, 그 일본의 미래를 위하여 나기코에 의하여 미리 차세대의 지도자로 낙점을 받아 (그러나 그 사실은 전혀 모른 체) 각각 다른 환경 속에 성장한 구니코와 미쿠니와 구사나기, 그리고 이들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이들의 황제 등극을 위해 절치부심한 모모코와 사요코, 미코 등, 그리고 이들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야욕을 위하여 이들의 자리를 노리는 카린과 료코...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신조어와 새로운 개념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마냥 황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소설은 소설이어서 작가는 자신의 개념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있으며, (작위적은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뿌리를 찾는 노력에서 손을 떼지도 않는다. 4천매에 달하는 원고 매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가의 세심한 노력들이 이 황당무계한 소설을 읽을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소설 내부의 장르간 배합이 아니라 소설과 다른 장르간의 배합이 두드러진 새로운 경계 소설 즈음이 아닐까 싶다. 

 


이케가미 에이이치 / 권남희 역 / 샹그리라 (SHANGRI-LA) / 열린책들 / 717쪽 / 20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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