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고 무참하게 밝혀지는, 우리들의 수면 아래의 자화상...
누군가가 파멸되기를 강력하게 바래본 적이 있던가. 그런데 그 사람의 파멸을 부추길 수 있는 절묘한 아이템을 만약 손에 넣었다면? 하지만 그 아이템의 사용으로 인해 그 사람은 공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침몰할 수밖에 없다면? 법의 테두리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놓은 도덕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단죄이며, 이러한 도덕적 차원이라는 것 또한 그 사람의 파멸을 바라는 나의 후미진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게다가 이러한 나의 행위에 대하여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다른 의견을 보이게 된다면?
갑작스러운 몰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 유명한 작곡가이며 지금 새천년의 시작을 위한 곡을 작곡 중에 있는 클라이브와 ‘더 저지’의 편집국장이면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있는 버넌이 함께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한때 몰리와 연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너무 서둘러서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른 몰리를 추모하면서 동시에 몰리의 남편인 사업가 조지를 혐오하는가하면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가 가머니에 대해 험담을 하면서 그 슬픔을 극복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추모식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넌은 갑작스레 조지의 호출을 받고, 그에게서 가머니가 찍힌 몇 장의 사진을 입수하면서 자신의 현재를 모두 걸고 모험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버넌은 파멸되기를 바라는 가머니가 복창도착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리가 찍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알게 되고, 이 사진을 이용한다면 그를 파멸시키기에 충분히라라고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클라이브에게 말하지만 오히려 큰 다툼만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클라이브가 등산 중에 한 여자의 외침을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연쇄 살인마의 검거를 늦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게 없다. 대체로 우리 모습은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 있다. 그리고 여기 수면 아래 희귀한 모습, 한 남자의 은밀한 사생활과 혼돈이 있다. 그 사람의 위엄은 순수한 환상과 순수한 생각을 통해 불어난 절실한 욕구에 의해, 정복할 수 없는 인간의 요소인 ‘정신’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다.”
우리들 삶의 다양한 측면들, 환하고 밝게 겉으로 드러나 있는 영역과 무참하고 어두워 드러나지 않는 영역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 이러한 것들에는 자기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많은 것들이 때로는 나를 배신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냉정하게 밝혀진다.
이안 매큐언의 소설은 (얼마전 읽은 프랑스의 기욤 뮈소처럼) 사건의 얼개가 튼튼하면서 대중적이고 영화화되기에 딸 알맞아 보인다. (이안 매큐언의 소설 <속죄(어톤먼트)>는 영화화되었고,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다.) 기욤 뮈소의 경우보다 문체도 소재도 좀더 무겁기는 하지만 많이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흡입력까지) 닮아 있다. 여행지에서 조용히 사색하며 읽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지까지 가기 위한 그 여정에 붙들고 있으면 좋을, 그런 소설이다.
이언 매큐언 / 박경희 역 / 암스테르담 (Amsterdam) / 미디어2.0 / 208쪽 / 2008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