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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02. 2024

천운영 《그녀의 눈물 사용법》

우리를 훑고 지나가는 작가의 처연한 수다스러움...

  분명 작가는 수다스럽지 않은데도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귀가 간질간질하다. 하늘에서부터 들려온 전파처럼 누군가가 계속해서 웅웅, 웅웅, 하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책을 읽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지만, 그곳에서는 수다 없음, 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문예중앙과 2007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이어 세 번째 읽는다. 스튜디오, 누드 사진, 사진사이자 남편, 아내와 일본 여행객, 그리고 할머니와 '말갛게 빛나는 소년 J‘로 이어지는 희안한 행보... 

 

  「그녀의 눈물 사용법」.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운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대신 오줌을 싼다...” 넘쳐나는 눈물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라고 말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눈물은 때때로 그 소금기 짭짤한 물질로서가 아니라 훨씬 더 고도로 농축된 심리 방출의 일환이기도 한 것... 

 

  「알리의 줄넘기」. 

  “... 흑인 피가 섞인 곱슬머리 남자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아버지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복서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권투의 세계도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제자리뛰기와 줄넘기만 수년을 한 아버지는 유망주의 스파링 상대역만 십년을 하고 도장을 나왔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알리 같은 이름이 있었다면 삶이 조금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소녀와 그 소녀의 제니라고 불리우는 치매 할머니와 그 소녀의 고모와 그 소녀의 아버지와 그 소녀의 줄넘기에 대한 이야기, 혹은 우리들에 의하여 언제나 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또다른 ‘우리’들의 이야기... 

 

  「내가 데려다줄게」. 

  문학동네와 2008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이어 세 번째 읽는다. 늪이라는 축축하고 미스터리하며 실체가 불분명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실재하는 듯도 실재하지 않는 듯도 한 시간에 발생한 안개처럼 홀연한 실루엣 살펴보기... 

 

  「노래하는 꽃마차」. 

  거인가족찬양단, 돌아다니며 은혜를 노래로 풀어내는 그 가족 속의 작은 아이, 그리고 바로 이 ‘말라비틀어진 계집’이 주절주절 부르는 듯 멜로디가 넘실거리는 소설... 문장의 흐름은 참 흥미롭다. 

 

  「내가 쓴 것」. 

  “내가 죽어 먼길을 떠나 어디엔가 도착해야 한다면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겠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 저편의 그림 속으로 가는 과정일 테니까. 그러니 이것이 누가 쓴 것이든 태우지 마시라. 내가 쓴 것, 그 속에 내가 있다.” 작가 자신의 소설 쓰기를 향하고 있는 ‘고백성사’일까. 

 

  「백조의 호수」. 

  “... 여자의 목소리까지 완전히 잦아들자, 집 안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호수처럼 고요한, 어떤 일렁임도 없는 정적. 여자의 호수에는 다섯 마리의 죽은 개와 그 개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배설물과 토사물만이 고요히 떠다니고 있었다.” 입에 넣는 음식을 눈에 보이는 음식으로 바꾸는, 푸드스타일리스트 여자가 좇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호수 위의 백조와 그 아래에서 기만적으로 휘두르는 갈퀴질 사이의 간극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되는 법... 

 

  「후에」. 

  “선행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독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엄포. 왜 그들의 잣대로 우리의 운명을 강요하는 건지 모르겠어. 행복과 불행을 왜 하나의 관점에서만 평가해야 하는 거야? 그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부끄러워해야 하다니. 틀어박혀 있고 싶고, 되는대로 살아가고 싶어. 그게 내 행복인데, 왜 그들은 그들의 행복만을 강요하는 걸까?” 언젠가 굉장히 더러운 집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듯 살아가는 한 엄마에 대한 내용을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들은 정말 자신들의 생활을 불행하다고 느꼈을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모두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혀를 차고 아이들의 엄마를 욕보이는 동안 아이들은 그러한 우리들의 선행에 대하여 정말 수긍하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바로 그 프로그램 ‘후에’ 실제할런지도 모를 후일담... 

 

 

천운영 / 그녀의 눈물 사용법 / 창비 / 272쪽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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