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작가가 낼름거리는 '새빨간 거짓말'의 향연...
경계 불분명에 중구난방과 좌충우돌의 이력을 지닌 작가 릴리 프랭키의 소설집이다. 『도쿄 타워』보다 앞서 발표된 작품집으로 어쩌면 보다 작가와 닮아 있다. 근미래와 현재를 넘나들고 과감하게 피력하는 성애의 기술(記述)이 그렇다. 일정한 주제에 일관되게 접근하고 있는 소설집이 아닌 자기 멋대로 쓰고 싶은대로 이것저것 쓰고 있는 폼 또한 그러하다.
「대마농가의 신부」.
도쿄의 여자 마쓰이는 중매 상품을 보고 시골의 기이치로라는 자와 선을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이때까지는 도시 처녀와 시골 청년의 맞선기, 같은 것일까 싶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낯선 시골 풍경이 나타나듯, 생뚱맞는 이야기들이 오고가면서 이야기는 이상하게 전개된다. “응, 이거? 이 근방 농사꾼들은 죄다 밭에 나갈 때는 이 차를 타고 다니느만. 시골은 휑허니 넓어놔서 집에서 저 끄트머리 밭에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 이만큼 빠른 차가 아니면 밭에 가기도 전에 해가 떨어져 버린다니께... 옆 눈으로 속도계를 바라보니 바늘이 21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아버님…. 이건 뭐라고 하는 차예요? 속도가 굉장하네요…... 아아, 이거? 람보르기니라고 하는 차라더만. 모를 거여, 도쿄 사람은. 시골 사람들만 타는 차니께. 요즘 세상에 이런 차는 한물갔지, 뭐...” 맞선의 상대자인 기이치로를 대신하여 나타난 기이치로의 아버지, 이 시골의 노인네가 몰고 다니는 람보르기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엉뚱하게 전개된다. “시골은 낮 시간보다 밤이 더 아름다웠다. 시각(視覺)이 아니라 살갗이나 본능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농장에서 대마를 키우면서 람보르기니를 서너대씩 가지고 있는 시골, 그러니 말이 되지 않는데도 작가는 시골의 풍광을 향하여 천연덕스러운 찬탄을 보내기도 한다. 모든 괴리를 뛰어넘는 듯한 작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와 같은 소설...
「사형」.
“... 하나의 법률에 의해 사회가 전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세계 각국이 현재의 사형제도를 앞 다투어 도입했다. 이제는 이미 사형 이외의 처벌이라고는 없었다... 어떤 사소한 죄라도, 제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모든 범죄자는 일률적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모든 범죄가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사회, 단순 절도죄를 저지른 청년과 그를 변호하는(이라고 해봐야, 사형은 사형이되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방법을 얻는 정도의...) 변호사의 이야기... 게다가 재판의 과정은 TV로 생중계되고, 사람들은 축국 경기를 즐기듯이 재판을 즐기고 참견한다. 그리고 드디어 이 최고의 변호사는 절도죄로 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하게 된 이 청년으로 하여금 최선의 사형집행방법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데... 그 사형집행의 방법은...
「둥근 파 꽃」.
마치 한 편의 야한 망가를 보는 듯한... 그러니까 한 시절 몸을 마구 굴리던 유코는 이제 대파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을 들락거리는 평범한 주부이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남자가 과거 유코가 야마자키라는 자와 만나 관계를 맺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를 모텔로 데리고 가는데... 스쳐 지나간 섹스의 민감했던 기억은 그렇게 쉽게 다시금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오사비시 섬」.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서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정한 나는 주변을 완전하게 정리하고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섬 오사비시로 들어선다. 자살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으로 찾아든 그곳에서 나는 어린 소녀를 만나고 해변에서의 꿈같은 섹스를 나눈다. 하지만 소녀와의 섹스는 곧 나에게 색다른 지옥을 선사하는데... “오사비시 섬. 이 섬에는 이 섬에서 태어난 사내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쓸쓸함에 떠밀려 허위허위 찾아왔다가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내들의 섬이다. 슬슬 일 좀 하고 술 한 잔 하고 절구질하고, 오직 그것뿐인 섬이다.”
「Little baby nothing」.
꿈도 없고 희망도 없이 배회하듯 도시를 살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어느 날 그 청년들 앞에 나타난 잠옷 차림의 여인... 그리고 이 아름답고 미스터리한 한 여인의 등장과 함께 이 청년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과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만났을 때 일으키는 엉뚱한 화학반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전쟁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휘고... 지뢰를 밟아 사라져버린 다리에 하고 있는 의족이 아니라, 남아 있는 다리의 부러진 발톱이 더욱 신경이 쓰이는 휘고... “평범한 위선자를 위해. 무지한 차별주의자를 위해. 속인과 광인을 위해. 죽어도 좋을 만한 사람들, 온갖 죄인을 위해... 그러니까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뭔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
엉뚱한 근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대마농가의 신부」와 「사형」을 거쳐, 야한 망가의 소설버전같은 「둥근 파 꽃」과 「오사비시 섬」을 거쳐, 얼렁뚱땅 청춘의 소설인 「Little baby nothing」을 거쳐,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에 와서야 작가는 은근슬쩍 자기 자신의 속내를 밝힌다.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위선보다는 위악을 택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새빨간 거짓말’과도 같은 소설 쓰기였음을...
릴리 프랭키 / 양윤옥 역 /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ボロボロになった人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40쪽 / 200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