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벼려진 노작가의 펜이 겨누고 있는 것들...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노작가의 유머가 있으니 살만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산문집은 팔십이 넘은 작가의 나이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쾌하고 유머러스하며 풍자로 가득하다. 더불어 노작가의 혜안을 살필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으니 책을 읽는내내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한 남자가 익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만일 어떤 남자가 주머니에 총을 감추고 당신을 위협하고 있는데 당신이 보기에 그가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것 같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라크가 우리를 위협할 뿐 아니라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 그냥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알카에다와 9․11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떨면서 기다려야 할까요? ...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발 부탁하건대, 엽총을 들고 거리로 나가시오. 12구경 2연발총이면 딱 좋을 거요. 거기 당신 동네에서 경찰은 제외하고 무장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를 날려버리시오.”
미국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로 엮인 책은 주로 전쟁과 환경, 그리고 예술과 정치적인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커트 보네거트는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향하여 자신의 펜을 겨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작동하는 원리가 얼마나 허접하고, 그러한 거대한 힘이 얼마나 우리를 피폐하도록 만드는지 역설한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는 물론이고 내가 태어났을 때도 산업화된 세계는 이미 화석연료에 운명을 걸고 있었다. 석유는 조만간 바닥이 날 것이다. 그리고 지독한 금단 현상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다. 그리고 금단 현상을 코앞에 둔 많은 중독자들처럼 우리 지도자들은 남아 있는 소량의 약물을 긁어모으기 위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렇게 커트 보네거트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계도하기 위하여 애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잘못되어 있고, 우리가 그 사실을 빨리 알아차려야 할 것임을 경고한다. 쇠락한 노인네의 말이라고 하기엔(1922년생인 작가는 올해 4월 숨을 거두었다) 그 말들에서 힘이 넘친다.
“모든 권력은 억측가들의 손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병균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도 똑바로 주시해야 할 억측가들에 관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다.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래서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작가가 한 사람쯤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우리의 문학판 안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 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엄숙하지 않지만 충분히 진지하고, 유머러스하지만 풍자가 가득하며, 노인의 혜안과 함께 젊음의 에너지로 충만한 정신을 보여주는 이런 작가를 갖고 싶다.
커트 보네거트 / 김한영 역 /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 문학동네 / 143쪽 / 2007 (2005)
ps. 전쟁에 대하여... “... 민간인이 전투나 전쟁에 대해 물으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 것이다. 과거엔 그것이 유행이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전쟁 이야기를 가장 인상적으로 말하는 방법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러면 민간인들은 온갖 종류의 용감한 행위들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 전쟁이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우리의 지도력과 동기가 아주 추잡하고 본질적으로 멍청하다는 사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에 대해 입을 다무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차마 그것을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하여... “재즈 역사가이자 훌륭한 작가이고 무엇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앨버트 머리가 한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노예제-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할 잔학 행위-가 번성했던 기간의 평균 자살률은 노예보다 노예 소유주 쪽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예들에겐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노예 소유주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예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함으로써 노인자살 충동을 떨칠 수 있었다...”
예술가에 대하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 그는 그래픽 예술가인 솔 스타인버그였는데,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것이든 물어볼 수 있었다. 질문을 하면 육 초가 흐르고 난 다음 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완벽한 대답을 해주었다... “솔, 피카소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엄청난 부자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하느님이 지구로 보낸 사람이지.” ... “솔, 나는 소설가이고 내 친구들 중에는 훌륭한 소설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그들이 아주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까요?” ...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 ... “솔, 당신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나요?” ...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없다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