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땅을 등진 자의 고착되지 않는 삶이라는 형벌...
“곤란한 것은 내가 써야 하는 것을 쓰지 못하고, 되는대로 아무거나 쓴다는 점이다. 아무도 이해 못 할, 심지어는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글을 쓰는 게 문제다. 나는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왜 쓰는가?”
초등학교 시절 마을에서 창녀로 통하는 엄마, 그리고 그러한 엄마를 찾아와 통정을 나누던 학교의 선생님(아마도 나의 아버지일 법한...)을 한꺼번에 찌르고 고향을 등진 나는 이제 토비아스 호르바츠라는 새로운 이름의 공장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간간히 글을 쓴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나는 지겨웠고 이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것도, 매일 엄마와 자러 오는 농부들 집에 가서 일하는 것도 다 싫었다... 내 소원은 단 한 가지. 이곳을 떠나서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는 것. 멀리 떠나서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주말이면 욜란드를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나머지 날은 항상 똑같다. 버스를 타고 공장에 출근을 하여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전에 글을 쓴다.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쓴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쓴다. 그리고 바로 그녀... 자신이 찌른 그 남자의 딸이기도 한, 내가 린이라고 이름붙인 그녀를 상상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그녀였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내가 미지의 아름다운, 비현실의 여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헤어진 지 십오 년 만에 정말 린이 온 것이다. 우리는 고향에서 아주 먼, 외국의 낯선 마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나의 생활은 변한다. 고향 사람들이 자주가는 바에서 즐겨 술을 마신다. 남편과 함께 온 그녀의 집을 살핀다. 그녀의 집을 살피기 위해 자전거도 산다. 나의 이복남매이기도 한 그녀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지 않은 채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엄마와 아버지를 찔렀듯이 그녀의 남편을 찌른다.나의 삶은 허공을 떠돈다. 머물고 있으되 안착하지 못한다.
“카롤린이 떠나고 이 년이 지난 뒤, 내 딸 린이 태어났다. 일 년 뒤, 내 아들 토비아스도 태어났다... 우리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겼다가 저녁이면 데려온다... 내 아내 욜란드는 아주 모범적인 엄마다... 나는 여전히 시계공장에서 일한다... 첫 번째 마을에서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태어난 고향을 등진 사람, 더구나 그곳이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의 땅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이 있다. 소설 속의 나는 그러한 상실감을 달래기 위하여 글을 쓴다. 하지만 그러한 상실감이 글로써 달래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쓰는 글은 상실감을 극대화시키고, 그 상실감을 좀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마구마구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은 작가만의 색을 가진다. 유랑의 세월을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쓸쓸함 혹은 씁쓸함이 소설 안에 있다. 소설을 읽고나면 창밖의 자취로 남은 빗방울처럼 작가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 용경식 역 / 어제 (Hiel) / 143쪽 / 2007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