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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야생의 힘으로 가득한 도시의 굶주림과도 같은 야만...

by 우주에부는바람

우리들 생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음습함은 여전하다. 그녀는 부러 밝은 면을 피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들 삶에는 때때로 빛도 든다. 물론 모든 작가가 그 빛을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소풍」.

“남자는 트럭믹서가 쏟아낸 콘크리트에 소장이 안 보는 틈을 타 길게 오줌을 눈다고 했다... 층이 높아질수록 화장실에 가기 위해 번번이 오르락내리락하기가 힘들었다. 오줌이 섞인 콘크리트로 아파트 기둥을 세우고 침실이나 거실에 벽을 쌓았다. 입주민들은 오줌이 섞인 벽 쪽에 침대를 놓고 잠이 들 것이다...” 콘크리트 타설 중에 오줌을 누는 남자... “... 요의가 없었는데도 한참 동안 오줌을 눴다. 여자가 오줌을 누는 만큼 안개가 사라졌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오줌을 누면 안개를 누그러뜨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리고 남자와의 여행 중에 요의를 참지 못하여 안개 낀 도로에서 오줌을 누는 여자... 함께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동시에 함께 하여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처럼 서로를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들 관계의 지독한 실루엣을 보여준다.

「사육장 쪽으로」.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교외의 집, 그 집에 사는 나와 아내와 아들과 노모, 그리고 그 너머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개소리... 도시에 출근하여 머무는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또렷해지고, 안식의 공간이 아닌 집은 야생의 공간에 접붙여져 갈기갈기 물어 뜯긴다. 안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을 향하여 컹컹 짖는다, 개들은...

「동물원의 탄생」.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 세상천지가 다 늑댄데.” 동물원에서 사라진 늑대와 그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 그리고 그 늑대를 닮아가는 사람들... 사냥의 대상과 사냥의 주체가 혼재되어 있는 이곳, 세상이 바로 사냥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밤의 공사」.

마을에 자리잡은 습지에 대한 작가의 표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 작가도 참 무던하다, 싶다.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이 작가의 글을 읽다 (약간 오버하자면) 헛구역질이라도 하지 않을까. 습지와 들쥐와 분뇨로 가득한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 남자는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남자를 더욱 냄새나는 결말에 다다르게 만든다.

「퍼레이드」.

퍼레이드 중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여섯 마리의 코끼리, 그리고 코끼리들과 함께 퍼레이드를 하던 K, S, E, P의 이야기... 사람들을 향하여 악기를 연주하던 이들의 삶은, 사라져버린 코끼리들의 삶에 비하여 나은가? (어디선가 본 듯한) 도심 한 복판의 벙커를 통하여 부연되는 일상의 환타지성...

「금요일의 안부인사」.

매주 금요일이면 김의 아파트에 모여 카드를 돌리는 세 사람... 외로움에 찌든 기러기 아빠인 박, 쌓여가는 적자투성이 치킨집 사장인 조, 그리고 고등학생 딸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김은 약속을 하지 않고도 매주 금요일이면 ‘둥근 테이블에 검은 천’을 깔고 둘러 앉는다. 하지만 일상에 찌든 이들의 소박한 돌출 또한 그리 쉬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분실물」.

상사인 송의 (부정하지만 듣지 않을 수 없는) 부탁을 제대로 해결하고 제 삶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는 박... 하지만 지하철에 놓고 내린 오래된 가방 속의 서류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첫번째 기념일」.

택배 집하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 그리고 배달되지 않고 남은 물건들... 그로테스크한 작가의 특징들이 살짝 수그러든 것 같지만, 소설 전체에서 묻어나는 음습함은 여전하다. 도대체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천형처럼 발현되곤 하는 그 음습함은 이 젊은 작가의 어느 부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잠복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들 도시를 정글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 작가처럼 정말 정글인 듯 도시와 그 속의 우리들을 표현하는 이도 흔치 않다.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이 사회야말로 거대하고 집요한 유기체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정글의 야만보다 더욱 집요한 우리들의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다.

편혜영 / 사육장 쪽으로 / 문학동네 / 252쪽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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