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 <초속 5센티미터>

소녀적 감수성의 극한을 경험하라...

by 우주에부는바람

저 옛날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을 법한 아련함을 다시 느낀다. 이 감독이 연출해내는 섬세한 감성의 사슬은 느슨한 듯하지만 강력하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과 또 그렇게 지나가는 열차의 속도, 소년과 소녀를 살짝 갈라지도록 만드는 건널목, 하늘과 아스라하게 보이는 지상의 이미지들, 그리고 조용조용 아름다운 화면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음악까지...

감독의 다른 작품인(게다가 1인이 모든 작업을 진행한) <그와 그녀의 고양이>(1999)를 보았을 때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감독의 경향은 여전하다. 보고 있는 사람의 가슴을 쥐락펴락하는 재주가 비상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는 감독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가만가만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고 만다. 화악 올라와버리는 감정이 아니라, 저 아래에서부터 수군수군 올라온 덩어리가 어느 순간 밤하늘에 활짝 펴지는 불꽃처럼 터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모두 3화로 이루어져 있다. 1화는 벚꽃초...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운명처럼 서로 이끌린 타카키와 아카리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중학교 입학과 함께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편지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아카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타카키가 탄 열차는 눈 속에 갇히고, 훌쩍 약속 시간을 넘기고 만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한밤중의 눈과 열차의 정차...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역에선 아카리가 기다리고 있고, 두 사람은 아카리 집 근처에 있는 벚꽃나무 아래에서 입을 맞춘다...

2화는 코스모나우트... 도쿄에서 가고시마 섬으로 전학을 간 타카키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 학교의 카나에는 어딘가 먼 곳을 향하고 있는 듯한 타카키를 좋아하고 있다. 그의 상냥함이 싫어질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카나에가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 날, 울음을 참지못한 카나에와 그런 카나에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두 사람의 머리위로 우주를 향한 로켓이 발사된다.

3화는 초속 5센티미터... 타카키, 아카리, 카나에.... 도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타카키는 어느 순간 오래 전의 그녀 아카리의 기척을 간혹 느낀다. 하지만 뒤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아카리는 타카키가 아닌 누군가를 만났고 이제 그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타카키를 떠올리는 것만 같다. 카나에는 타카키와 어설프지만 연인 생활을 했고 그 사이 천통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타카키에게 보냈지만 타카키는 카나에와 일센티미터도 가까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타카키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하늘을 향하던 오래전의 꿈을 떠올린다.

줄거리는 요약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다음의 감정을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이 작가는 편집증이 아닐까 싶을만큼 섬세하다. 자신이 만들어온 음식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표현하는 타카키에게 수줍음을 감추기 힘들어하는 아카리의 발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사랑 고백을 하려는 카나에가 앞서가는 타카키의 옷자락을 잡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관자놀이가 뻐근해지고만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하지만 지금은 빈 손을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들의 과거의 한 켠, 그 한 켠을 곱디곱게 떼어서 펼쳐 놓고 있다. 사진 위에 채색을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그림들은 어느 한 컷 스리슬쩍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리고 각각의 컷들은 너무나도 정교하게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73년생 감독은 그렇게 소녀적인 감수성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초속 5센티미터 (秒速 5センチメ-トル) / 신카이 마코토 감독 / 미즈하시 켄지, 하나무라 사토미 목소리 출연 / 62분 / 20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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