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SF물을 향한 듀나의 끊임없는 경배의 방식...
사실 예전처럼 신선해 하지는 않지만 듀나의 글을 계속 읽는다. 우리나라처럼 비주류에게 척박하기 그지없는 토양 위에서, 꾸준히 자신(혹은 자신들)의 발언 형태를 유지하면서 발언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SF 문학장르 그리고 B급 무비들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가진 듀나의 다섯 번째쯤(?)의 단편 소설집이다.
「대리전」.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대한 이야기의 변주를 볼 수 있다. 아직 2기 문명을 벗어나지 못한 지구에 어느 날 외계로부터 물질이 하나 떨어지게 된다. (음, 그러고보니 소설에서의 코어는 영화 <트랜스포머>에서의 큐브와 닮아 있다) 그리고 이를 발견한 대한민국의 한 남자가 외계인들을 위한 지구 관광을 시작하고, 주인공인 나는 이러한 여행 업체의 직원이다.
“... 지구와 같은 2기 문명에 앤시블 테크놀로지 전수를 막는 최우선 지침(Prime Directive)은 부당하다. 그건 2기 문명을 될 수 있는 한 오래 자기네들을 위한 리얼리티쇼 무대나 테마 파크로 박아두려는 3기 문명의 일방적인 오만이다. 연합의 탐사선이 2기 문명과 조우하는 건 우주연합 42만 사이클 역사상 단 13번 밖에 일어난 적이 없는 희귀한 사건이다. 당연히 지구 역시 책임을 지고 그 역사적 순간에 동참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외계인들의 지구 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엔시블과 코어에 문제가 생기고 나는 부천을 중심으로 이러저리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핵심에 나는 접근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문제 상황의 와중에 오래된 레즈 친구인 수미가 휩쓸리게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내가 보고 있었던 건 우주전쟁이었어. 수많은 외계 종족들이 삼정초등학교의 운동장에 모여 우주의 운명(그것이 무엇이든)을 건 전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부천에서 사는 조카를 둔 덕에 중간중간 아는 지명이 나오는 데 삼정초등학교도 그 중 하나...) 결국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바탕 우주전쟁이 치러지고 코어는 사라지고, 나는 겨우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며, 수미의 뇌는 백업이 된 상태에서 언제쯤 되살릴 것인지 생각 중이다.
그그그카탕모그무 해성이며 꼭도각시 섬의 종족이 변이되어 나타난 꼭두각시들, 3기 문명을 가진 마자랑 인과 수미의 몸에 들락거리는 바기-지랑 까지... 기존의 SF물들을 다양하게 섭렵한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무대를 부천으로 하고, 외계인과 지구인들의 싸움이 아닌 숙주가 된 지구인들이 전쟁을 치러야 하는) SF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끼굴」.
침대 아래에 여기와 다른 어딘가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면, 내가 사실은 나를 보살피는 엄마와 상관없는 외계의 어느 한 행성과 연관되어 있다면... 누구든(은 아니고 누구나는) 해봤음직한 상상력의 발로...
「어른들이 왔다」.
아직 문명의 초창기에 있는 말리카 식민지의 싸움에 직접 뛰어들어가는 잉그램의 행보... 미개한 누군가들을 개선해보겠다는 신념은 그를 퐁야퐁야에 이어, 우엉우엉우엉우엉으로 빠르게 격상시키고, 피용피용피용피용피용으로 불리우는 폐허의 왕의 바로 아래까지 올려 놓지만... 미개한 부족들의 통합을 열망했던 잉그램의 최후는 보잘 것 없는데...
「술래잡기」.
누나와 나 사이의 술래잡기 놀이... 누군가의 인생을 가지고 하는 게임, 그리고 게임의 종료 후에 다시금 되살려내는 사람들... 끔찍하고 섬찟하지만,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그들 자신은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듀나 특유의 차가움이 넘실거리는 경계 소설류라고나 할까...
듀나 / 대리전 / 이가서 / 307쪽 / 2006